올드타운 is 홈타운
4일 차 아침이 밝았다.
치앙마이에서는 주말에만 열린다는 마켓들이 몇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인 찡짜이 마켓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파워 J가 되어버린 아내가 짠 일정은 아침 일찍 찡짜이 마켓을 들렀다가, 코코넛 마켓을 찍고, 저녁에 나이트 바자에 가서 야시장을 도는 것이었다. 1일 3마켓이라니.. 갈길이 바쁘다.
bolt로 잡은 택시를 타고 찡짜이 마켓으로 갔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인지라 비교적 한산할 때 마켓을 둘러볼 수 있었다. 다음 일정으로 넘어갈 때 주위를 둘러보니 치앙마이 관광객들은 전부 이곳에 모여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북적였다.
마치 한국의 5일장 같기도 했고, 파리의 방브 마켓 같기도 했다. 각자가 만든 제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인상 깊은 제품이 많지 않고 양산형 공산품처럼 느껴졌다. 나는 모래알 속에서도 가끔 보석이 나올 수 있으니 기대를 접고 있지는 않았지만 열정까지 샘솟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모든 가게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구경을 했다. 치앙마이에서만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식으로 판매상품을 둘러보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쇼핑인가- 싶었다.
그중에 기념될만한 걸 찾고 있었는데, 높이가 낮은 캔들을 꽃처럼 예쁘게 만들어 놓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불을 켜면 안 될 것 같고 온전히 관상용처럼 보였다. 코끼리의 나라답게 나무로 만든 코끼리 등 위에 캔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다양한 동작을 하고 있는 코끼리 중에 무거운 코를 가지고 있어서 힘차게 발을 박차고 있는 친구로 선택했다. 그저 아이쇼핑만 할 때도 여행하는 기분이긴 했는데, 무엇인가를 사는 행동과 과정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진짜 여행처럼 느껴졌다.
찡짜이 마켓은 작은 소품샵들 뿐만 아니라 먹거리 부분이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아내는 늘 여행에서 '너무 빨리' 선택해서 더 좋은 선택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경주에서 황남빵을 사 먹는데 눈앞의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사버리고, 그다음에서야 1등 맛집 가게를 발견하는 경우다. 이번에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싶어서 당장 선택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행동에 관성이 붙어있는지 먹거리 장터에 들어가자마자 첫 가게에서 음식을 샀다. 형형색색의 색깔로 만들어진 핑거푸드를 파는 곳이었다. 종류는 50가지는 되어 보이고 1개당 아주 저렴해 4~5가지 종류는 골라야만 하게 생겼었다. 마침 아내와 나는 다양한걸 맛보기를 원하는 상황이었으니 딱 안성맞춤인 가게이긴 했다. 자리에 앉아 입에 넣어보니 따뜻함은 날아가버린 상태긴 했지만, 태국의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이후 돼지고기 튀김과 카오 소이, 팟타이를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읭? 너무많은가.
일정상 두 번째 마켓을 가기 위해 찡짜이 마켓을 나오는데 사람도 엄청나게 많고 도로에 교통체증도 심각했다. 차가 효율적으로 통행할 수 있게 만들어진 도로가 아닌 이유도 있었지만, 그냥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서 그랬던 것 같다. 일찍 나와서 일정을 시작한 덕택에 여유로운 관광을 할 수 있었다고 서로 셀프-격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시기적으로도 찡짜이 마켓을 빨리 털고(일정을 클리어하고?) 일어난 게 좋았는데, 내 귀에 한국말이 많이 들리기 시작해 이 공간에서 나가고 싶었던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목적지는 코코넛 마켓. 코코넛 워터 등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굳이 해당 마켓까지 가야 하냐는 내 질문에 아내는 수줍게 이렇게 말했다.
"유명한 포토 스팟이래..."
그렇게 20분을 달려 도착한 코코넛 마켓은 찡짜이 마켓보다 훨씬 작은 수준의 먹거리 장터가 들어서 있었고, 미리 식사를 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먹으러 온다기보다는 정말 사진 찍기가 너무 좋은 곳이었다. 마침 날도 쨍~~ 했는데 야외에서 자연광 아래 사진을 찍는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사진 찍으러 오는 걸 의도한 것처럼 10개의 도랑을 길-쭉 하게 파놓았고 코코넛 나무들을 일렬로 심어놓았다. 그래서인지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각자의 카메라에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코코넛 마켓에 할애하려고 했던 건 3~4시간이었지만 사진 찍는 것 말고는 딱히 할만한 게 없었다. 수많은 관광지를 둘러볼 굳은 다짐을 하고 숙소를 나섰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웠다. 계획을 수정하여 시에스타를 시행해 보자는 취지로 숙소로 돌아가 찬물에 풍덩! 빠졌다.(물론 나만)
약간 텐션이 떨어진 나는 숙소로 돌아오며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남들 다 가는 관광지(예를 들자면 XXX마켓)보다는 올드타운 내에서 소소하게 돌아다니는 게 우리의 여행 스타일이랑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정을 짠 아내도 이에 동의했으나, 저녁에 가볼 예정인 나이트 바자는 좀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야시장이 '찐'이라고 하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에서 좀 쉬고 나와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사원에 다시 방문해 보기로 했다. 치앙마이에 와서 너무 첫 일정으로 방문했었던지라, 대충 보고 온건 아닌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핵심 관광지일 수도 있는데 숙소 앞이라고 천대하지는 않았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방문한 왓 페디 루앙. 오후 4시에 방문을 해보니 지난번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더 여유롭게 황금빛 사원 입구를 감상할 수 있었고, 한없이 무너져 내린 코끼리 동상도 찬찬히 볼 수 있었다. 메인 관광 이벤트는 다시 찾아간 사원이 아니었다. 사원 안을 산책하고 있는데 사원 내 전원주택처럼 보이는 곳에서 대문이 열렸다. 열린 대문에서는 셰퍼드나 골든 리트리버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한 20마리는 나온 것 같았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한쪽에 쌓여있는 애호박을 물어뜯어 먹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사원 내 관광객들이 다 같이 모여 개들을 쓰다듬기도 하고 사진 촬영하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아지를 '매우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에 낯선 개를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원에서 벌어진 이벤트를, 가장 즐거운 이벤트로 받아들였다. 그런 아내와 함께 강아지를 쓰다듬거나 애호박을 입에 넣어주지 않고,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아내를 지켜봤다. 아내도 꼭 나와 함께 강아지를 쓰다듬어야만 즐거운 것은 아니니, 혼자서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따로-또 같이'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우리 부부를 보니 어딘지 베테랑 부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즈음 사원을 나와 나이트 바자로 향했다. 구글 지도상으로는 걸어서 30분~?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고, 아내가 알아본 식당도 가는 길에 있는지라 택시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 길이 매우 좁아서 시간은 두배로 걸렸고, 거리의 매연도 상당해 목이 칼칼해져 아내와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식사라도 하면서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려고 했는데, 가려던 가게는 오늘 영업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나이트바자에 도착하기 직전에 목이라도 축이려고 산 망고주스가 너무 공산품 같아 절반도 먹지 않고 버려버렸다.
금쪽이처럼 불퉁불퉁 거리며 불만을 표하는 내게 아내는 조금만 더 가면 나이트 바자라며 달랬다. 이거 완전 한국에서랑은 정반대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나이트바자는 딱-히 볼만한 건 없는 느낌이었고, 야시장에서 음식만 먹고 가기로 결정했다. 전날 방문했던 야시장보다 규모는 훨씬 컸지만, 그만큼 사람도 훨씬 많았다. 매의 눈으로 빈자리를 찾아냈고, 아내가 자리를 지키는 사이에 후다닥 4가지 종류의 음식을 사 왔다.
치앙마이에서 먹는 팟타이는 너무 내 입맛에 맞았다. 특히 어떤 가게에서 먹던지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보여주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 달 살기를 한다면 며칠차에 팟타이에 질리게 될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린 카레와 쌀밥은 생각 외로 괜찮은 맛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쌀밥이 항상 메인은 아니다 보니, 이렇게 가끔 쌀밥을 먹을 때마다 굉장히 반가운 마음이 들곤 했다. 그린커리에 들어간 향신료들이 내 입맛에는 꽤나 괜찮았고, 녹색이라는 색깔은 호불호가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팔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고기는.. 굳이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팟타이와 그린커리의 맛에 가려져서 그런것인가-하고 열심히 생각하면서 먹어봤는데도 고기는 한국에서 먹으면 충분할 것 같다. 치앙마이에서는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걸 선택하는 걸로~!
마켓 3군데를 돌아보니 첫 타자였던 찡짜이 마켓을 제외하고는 오랜 시간 있기는 어려운 곳이라고 판단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보니 구관이 명관이오- 중심지는 중심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 올드타운이라는 사각형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여행의 마지막날인 내일은 올드타운 안에 콕! 박혀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여행 내내 그랬듯이,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오늘의 안주는 '과일'이다. 오며 가며 사온 과일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데 하루의 피로가 싹 날라갈 정도의 대 존맛탱이었다. 망고는 정말 명불허전이고 하얀 자몽은 식감과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무데도 안 돌아다니고 과일이나 계속 먹고 있어도 치앙마이 여행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