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일상 속 명상처
지난번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집 앞의 도서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네 번째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궤적과 겹치는 그 장소들에 대한 소회를 적었다. 그 글을 쓰며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미술관은 어떨까? 나 역시 꽤 많은 미술관을 다녀보았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가봤던 미술관에 대해 개괄해 볼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번에 미술관 방문했을 때 느낀 점들을 기록하는 것이 더 괜찮겠다고 생각이 든다. 마침 최근에 유홍준 작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지 않았던가. 하나하나 깊숙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오랜 시간의 역사와 느낀 점을 완숙하게 써서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 콘텐츠가 되는지 말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아내와 미술관과 전시회를 관람하러 방문할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관람 후기를 잘만 남겨놓는다면 추후에 엮어서 시리즈물로 발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도, 공연도, 영화도, 책도 참 많이 소비했지만 정작 내 안에서 살아남겨서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는 감각으로 전달한 것은 많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고만 말하고 넘어가버린 순간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기록으로 쌓인다면, 언젠가 나만의 시리즈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5년 6월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내와 서울시청 근처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을 걷는 외국인 여행객들은 발걸음이 바빴고, 어린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젊은 부부는 아이들의 장난들에 발이 묶여 목적지를 잃은 듯했다. 예전에는 야외에서 뛰어놀 정도의 애들의 부모를 보면 나보다 한참은 형님/누님들이겠거니 싶었는데, 오늘은 그들이 내 또래와 동년배처럼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덕수궁 돌담길에 앉아 행인들을 구경하다가 바로 옆 서울시립미술관에 방문했다. 별도의 예약이 필요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데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몇 년 전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전을 진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줄이 길게 늘어선 걸 본 기억은 없긴 하다. 한낮의 햇볕이 화창함을 넘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에어컨의 시원함과 탁 트인 공간이 몸과 마음을 단번에 식혀주었다.
아내와 주변을 자유롭게 둘러보고 있는데, 복도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아. 2시부터 천경자, 가나아트컬렉션에 대한 도슨트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은 2층 전시실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2시부터 도슨트 프로그램이 시작된다고~? 지금 1시 50분인데 이런 나이스한 타이밍이 또 있는가!?
아내와 함께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도슨트의 설명이 참 매끄러웠는데, 그분이 설명을 듣고 있자니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하는 궁금함도 들었다. 어릴 때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인어공주를 보면 '와 인어공주다!' 싶었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저분의 근로 환경이 참 고되겠구나', 또는 '저분의 pay는 얼마나 되실까'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 너머의 것을 가늠해 보려는 낭만 다 빠져버린 사고방식을 하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설명이 없었다면 작품들을 온전히 감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녀의 이상이나 화풍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작품을 잘 팔지도 않았다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도록 서울시립미술관에 대부분을 기증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설명을 들으니, 그녀가 동양화를 그리던 시대에 서양화적인 요소를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인상 깊었다. 원근법을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과, 동양화 채색에서 사용하는 안료를 통해서 서양화적인 느낌을 내는 화풍이었다는 점이 그러했다. 이러다 보니 다른 서양화 작품들에서의 아크릴 채색한 것보다, 색감이 텁텁했지만 오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어 깊은 질감이 녹아있어 보였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60~70년대에 해외여행이 원활하지 않은 시절이었을 텐데도 전 세계를 누비며 그림을 그려왔다는 점이다. 각 나라의 여인들의 모습을 일관된 눈동자 형식으로 표현한 것도 좋았고, 자신이 관심을 가진 작가들의 실제 거주하는 지역을 방문해서 그 일대를 그려낸 것도 좋았다. 그중에 브로드웨이의 극장 광고 장면 등을 그린 것도 있었는데, 캣츠가 주제인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캣츠가 증말 오래된거네 그러고 보면 ;;). 이 작품은 도슨트의 설명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도슨트의 설명은 이랬다. 천경자님이 캣츠를 굉장히 감명 깊게 보았는데, 해당 연극에 등장하는 고양이들마다 자신만의 넘버(뮤지컬에서 메인 노래를 코멘트할 때 사용하는 단어)를 가지고 있어, 각 고양이가 자신만의 넘버를 부를 때의 모습들만 골라내서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그림에 10마리의 고양이가 각자 자신들의 넘버를 부를 때의 모습으로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림의 배치가 순간순간들의 하이라이트를 다 가져오는 작가의 의도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조금 더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벽에 걸려있는 설명에는, 캣츠 등장인물들을 한 폭의 그림에 모았다고만 기재되어 있어 이해가 깊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이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그림들이 아주 커다란 캔버스에 표현되어 있었고, 이번에도 도슨트가 아니었다면 무심코 넘어갔을만한 작품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특별전의 목적으로 나와있던 것은 아래와 같다.
광복 이후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남북분단을 직접 겪었던 세대는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이어졌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95는 광복 이후에 출생하였으며, 이들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서 광복 전후 일련의 근현대사를 접하고 배웠다. 이번 전시는 예술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담론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사회, 정치, 역사적인 맥락과 개인의 서사를 살펴봄으로써 시대적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특히 입구에 표현된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괜히 마음에 와닿았다. 일단은 수십년을 관통할 수 있는 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경외심이었고, 정제된 의지와 감정을 표현한 것에 대해 탁월함을 느꼈다. 마치 시를 읽고 입장을 하면, 이번 특별전시전을 대하는 마음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겠다는 것 같았다.
이 사진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바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결과물이겠거니-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압도적인 피해를 앞으로도 영원히 예술작품이라는 이유로 끄집어내도 괜찮을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원자폭탄이 터지는 그 순간만큼은 무음처리로 담백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 작품 역시 비슷한 주제를 곰탕처럼 재탕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작품 비하인드를 모르는 상태로서 나와 아내는 작품 제작 방식에 대해 한참을 갑론을박했다. 이것은 자수로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은데 갖가지 색의 실로 자수를 해나간 것인지, 하얀색 실로 자수처럼 도배를 해놓고, 그 위를 물감으로 색칠한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비하인드가 있었다.
작가는 2008년 집 마당으로 날아든 북한 '삐라'에서 착안해서, 작품을 삐라를 통해 받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를 도안으로 제작해 천에 인쇄한 뒤 북한에 물건을 공급하는 브로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렇게 전달된 이미지 도안은 중국을 거쳐 북한 자수 노동자들에게 보내지고, 완성된 작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설명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2009-2010 / 북한 손자수, 면사 위 실크사, 중간자, 밀수, 뇌물, 긴장감, 불안감, 검열, 이데올로기, 나무 프레임, 약 2,200시간/ 4명
작품의 대상은 한반도에 광복을 어떤 방식으로든 도장 찍게 한 사건이겠지만, 지금은 분단된 남한과 북한의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것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이 든다. 이걸 보면서 예술은 콘텐츠를 어떻게 기획하고,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다르게 말한다면 자수 실력이 너무 뛰어나거나, 자수 도안에 대해 디자인적으로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게 아니더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 어떤 의도를 담을지, 관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다.
굳이 우리 업계에서 쓰는 time-charge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렇다.
작업 시간은 실무가 90 / 아이디어가 10이지만, 가치는 그 반대다. 스토리와 의도가 90 / 물리적 실행은 10.
이걸 보면서 예술은 콘텐츠를 어떻게 풀어내고, 어떤 스토리를 담느냐가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스토리텔링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예술만 그런 걸까?
이 작품을 보니, 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또 다른 번뜩였던 아이디어는 아래와 같다.
꽃으로 뒤덮혀있지만 자세히 보면 총을 겨누고 숨어있는 손과 총구가 보인다. 이를 통해서 보여준다고 하는 건, 폭력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내며 포장하려고 해도 본질은 포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품을 뒤덮고 있는 꽃은 생화가 아니라 조화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런 지니어스한게 또 있나-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는 순간들이었다. 언뜻 나만의 견문으로 내린 결론과 방향성이, 알고 보니 작가의 깊은 의도에 처참히 패배하는 기분이 들었다. '듣고 보니 그렇다'를 넘어 '듣기 전까지는 왜 알지 못했나' 자책의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마지막 파트는 탈북자와 관련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니다, 이제는 탈북민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매우 예술적으로 존재를 규정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온 미래(Early Arrival of Future)'
본인들을 어떻게 프레임화 할 것인지에 대해, 철학적인 존재 가치를 예술적으로 접근을 했다고 생각한다. 가나인 미술관에 전시된 여러 가지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북한 동포들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탈북민들이 다른 제3국에서 오는 불법체류자들이 난데없이 쑥쑥 늘어나는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의 모습 중 일부가 조금 먼저 왔다고 표현하는 것으로써,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정당화하고 남한 쪽 구성원들에게 통일을 전제로 하는 구성원들에게는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곁을 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공간이 주는 감각은 어마무시하다.
도서관이 나에게 주는 감각처럼
내가 그냥 가서 앉아있고 그곳에 가는 것에 대해 마음의 진입장벽이 높지만 않다면 충분히 그곳에서 사색하고 그곳의 시간을 향유하며 예술과 삶에 대해 자신을 고찰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 아닌가. 시립미술관은 시민이 이용하고 애용해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