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개강
벌써 미국에 온 지 2주일이 훌쩍 지났다.
사실 체감상으로는 1달도 더 된 것 같다. 그만큼 미국에 오고 난 직후부터 누구보다 열심히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내가 있는 곳은 시카고 공항에서 내려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산 소감을 말하자면, 말 그대로 평화롭다. 도시이지만 머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복잡하지 않고, 바로 옆에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어서 바다로 자주 오해받는 미시간호가 있다. 한 평생을 바다 옆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넓게 펼쳐져 있는 미시간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사람들도 참 친절하다. 처음에 가장 적응이 안 되는 동시에 신기했던 점 중 하나가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도 씩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옷가게에서 한창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I love your outfit!"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오고 가며 눈인사 정도는 했던 것 같다. 근데 뭔가 여기는 좀 더 본격적으로, 혹은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어느 순간 익숙해졌고,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미국에 오기 직전까지는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무서웠는지 혼자서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일단 미국은 생전 처음이었기에 나에게는 미지의 땅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더군다나 이제는 고등학생도 아닌 성인이기에 내 행동에 따른 결과를 모두 내가 감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이 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 기숙사, 수업 등등 미국에 오기도 전에 머릿속은 걱정들로 가득했다. 근데 막상 학교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호의적이었고, 환경도 훨씬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했던 백신을 바로 맞을 수 있었기에 한시름 크게 놓았다.
우연인지 룸메 중에 한국어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이 친구와 연락이 닿아서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카톡으로 연락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ESL 교육 쪽 전공을 하는 친구였고, 심지어 나중에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어뿐만 아니라 문화나 음식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난여름부터는 코리안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언제든 내가 원한다면 음식을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 이 친구가 나를 위해 뭔가 특별히 해주지 않아도 내 문화를 존중해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겐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개강하기 전까지 밀워키 구석구석을 버스를 타고 여행했다. 여행은 지난 온라인 수업에서 ESL 수업을 함께 들으며 친해진 한국인 언니와 함께 했다. 혼자였으면 아무래도 캠퍼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고 쉽지 않았을 텐데, 언니가 있어서 거리낌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밀워키 시내버스를 탈 때 카드를 보여주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점을 나와 언니가 아주 잘 활용해서 돌아다녔다. 어디를 여행하든 항상 교통수단으로 적지 않은 돈이 깨지기 마련인데, 우리는 교통비 0원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여행했던 곳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밀워키 퍼블릭 마켓(Milwaukee public market)이다. 가장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한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4단계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5명만 모여도 많다고 생각이 드는데, 마켓 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었는지 잠깐 까먹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마켓의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스크를 꾹 눌러쓰고 마켓 한 바퀴를 돌고 해산물 맛집으로 유명한 세인트 폴 피시 컴퍼니(St. Paul Fish Company)를 찾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주린 것에 더해서 음식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배가 무척 고픈 상태였다. 다른 블로그 후기를 봤을 때는 호불호가 있길래 음식을 기다리며 솔직히 조금 불안했다. 그런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나와 언니 둘 다 그릇을 싹 비웠다. 내가 시킨 음식은 킹크랩 롤이었는데, 안에 킹크랩이 싱싱했고 무엇보다 빵이 버터에 구워서 달달 고소하니 너무 맛있었다. 솔직히 퍼블릭 마켓은 크게 기대했던 것보다 구경할 게 없어서 아쉬웠지만 세인트 폴 피시 컴퍼니의 다른 음식을 도전해보기 위해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퍼블릭 마켓 이외에도 커피 맛집으로 유명한 콜렉티보 커피(Colectivo Coffee), 유명 아이스크림 집인 퍼플 도어(Purple Door)와 같은 맛집들과 걸으며 구경하기 좋은 리버뷰(River View)도 갔다. 하루에 모든 곳을 다 돌기에는 나나 언니나 체력이 모자라서 매일 유명한 레스토랑이나 장소를 하나씩 골라서 그 주변을 탐방하는 식으로 여행을 했던 것 같다. 미국에 오면 차가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클 줄 알았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버스 서비스가 생각보다 잘 되어있어서 오히려 버스를 타고 밀워키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개강을 했다. 개강을 하고 나서는 전처럼 매일 여행할 수 없지만 언니와 주말에는 꼭 새로운 곳에 가보기로 약속했다. 처음으로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이런 말 하면 좀 웃기긴 하지만 진짜 대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도서관에 가서 룸메가 알려준 조용하고 경치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는데 이 또한 진짜 대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공부도 더 잘 되는 기분..? 이건 아직 수업이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이 정도면 처음치고 미국 캠퍼스 생활에 꽤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