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생의 봄방학 LA 여행
라라랜드 어때? 재밌어?
나의 이러한 질문에 대한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지루해"
또는
"내 인생 영화야"
영화가 개봉된 후로 아카데미 상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영화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극단적인 후기로 인하여 영화를 보는 것을 매번 망설였다. 또 영화 러닝타임은 왜 이렇게 긴지, 영화를 보려고 시도하려다가도 그 시간에 짧고 강렬하게 끝나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자꾸만 미루게 되었다.
이번 년 2월 초에 LA 여행을 계획하면서 같이 가기로 한 언니와 함께 라라랜드를 꼭 보고 가자고 약속을 했다. 사실 이 또한 서칭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라라랜드 영화에 나왔던 대부분의 장소가 LA 안에 있었다. LA에 있는 많은 관광 명소들이 원래 유명하기도 했지만 영화로 인하여 더 유명해져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그곳에 가도 큰 감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LA 여행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하여 반강제적으로 영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라라랜드에 대한 나의 짧은 감상평을 남겨보자면, 나는 왜 하루빨리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지 그저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좋은 의미로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사람마다 영화에 대한 취향이 다르기에 지루하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가 길었던 만큼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을 주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노래도 좋았고, 영화의 색감과 배경 모두 너무 예뻤다.
영화를 보고 나니 확실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즐거웠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그때가 한창 학기 중이었을 때라 수업과 과제에 치어 여행에 크게 마음을 두지 못했다. 지난가을 학기 중간 방학에는 비교적 가까운 시카고에 가서 그나마 어렵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꽤 큰 규모의 여행이라 오히려 계획을 짜는 데에 부담을 느꼈다. 멀리 가는 만큼 더 알찬 여행을 하고 싶어서, 유명한 여행지인 만큼 가야 하는 명소를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즐겁기만 해도 될 여행 계획이 또 하나의 큰 과제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라라랜드를 보게 되었고, 그제야 여행 계획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그저 행복하게 즐기고 오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LA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도시의 느낌은 봄 그 자체였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지만 덥지 않은, 딱 적당한 온도와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완벽했다.
센 바람과 함께 눈이 오던 밀워키와는 너무 다른 계절과 풍경에 잠깐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봄바람에 그제야 내가 여행을 왔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다.
엘에이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았던 라라랜드 영화 속 장소는 그랜드 센트럴 마켓(Grand central market)이었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엘에이의 대표 재래시장이라고 한다. 마켓 안에는 다양한 메뉴의 식당과 바, 식재료 판매점까지 입점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이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으로 잠깐 나왔었는데, 영화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서도 자주 봤던 장소라 나에게는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마켓 안의 많은 음식점 중에 두 곳의 음식을 주문하였는데, 에그 슬럿(Eggslut)과 차이나 카페(China Cafe)였다. 차이나 카페는 그 당시 중국음식이 당겨서 주문한 것이었고, 메인은 에그 슬럿 샌드위치였다. 에그 슬럿은 한국에 체인점이 생겨날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에게 유명한 곳이다. 우리가 갔을 때가 평일 월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게들보다 꽤 줄이 있었다. 메뉴판에 샌드위치 종류가 여러 가지 있었는데, 나와 언니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에그 샌드위치인 Fairfax를 시켰다.
샌드위치 후기는 하도 한국사람들에게 유명하기도 하고, 맛있다고 하니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평범했다. 부드러운 햄버거 빵 사이에 포슬포슬한 스크램블 에그와 치즈가 들어가 있다. 솔직히 내가 한국에 있다가 엘에이에 여행 와서 이 샌드위치를 맛보았다면 더 맛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서 두 학기 가까히 지내면서 극단적인 맛의 음식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이 샌드위치가 나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우리가 두 번째로 방문한 영화 속 장소는 엔젤스 플라이트(Angels Flight)이다. 엔젤스 플라이트는 경사면에 지어진 짧은 케이블카인데, 라라랜드 촬영지로 가장 잘 알려진 곳 중 하나이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의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우리가 점심을 먹고 잠깐 들리기에 딱 좋았다. 처음 타보는 높은 경사로에 나무로 만들어진 케이블카가 나는 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사실상 타고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2-3분이었던 것 같은데, 1센티 간격을 두고 바로 옆을 지나 내려가는 맞은편 케이블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돈은 아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내릴 때 각 사람당 $1을 내는 방식이다. 시간도 짧고, 매우 덜컹거리는 케이블카 타는데 $1은 좀 비싸다고 느꼈지만, 그 나름의 낭만과 풍경까지 치른 값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라라랜드 영화 촬영지는 그리피스 천문대(The Griffith Observatory)이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라라랜드 촬영지 중에서도 내가 가장 기대하던 장소였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곳이 메인 배경지가 되었고, 또한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탭댄스 장면도 이곳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촬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피스 천문대를 방문하는 날 오전에 우리는 할리우드를 먼저 다녀오는 스케줄이었어서 하마터면 가장 중요한 선셋 시간을 놓칠뻔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마침 해가 산 뒤로 넘어가고 있었고, 가장 예쁜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그리피스에서 봤던 선셋은 아직까지 그 아름다운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색과 천문대의 모습, 산 위에서 바라보는 엘에이의 모습 모두가 아름다웠다.
그날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봤던 풍경은 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장소를 직접 가보니, 머릿속의 장소와 실제 장소가 겹쳐지면서 영화의 그 장면이 더 입체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분명 처음 가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익숙하고, 익숙하기에 더욱 반가운 그런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영화의 촬영지를 따라서 여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즐겁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 것 같다.
라라랜드를 본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아닌 이 여행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이 영화를 접하고 엘에이 여행을 떠났던 것에 오히려 더 큰 고마움을 느낀다. 좋은 영화와 더불어 좋은 추억을 가지게 되어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