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내 생의 첫 책을 출판했다.
"Closet of Braka"
숙제로 제출하거나 대회에 참여하기 같은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고 순수 내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사람들이 내 책을 통해 어떤 정보를 얻길 원할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책 출판의 기회이기에, 주제 하나를 결정하는 데에만 몇 달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한 끝에 결정했던 주제는 바로 '패션'.
패션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더 알아가고 싶은 분야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처음에 패션을 주제로 선정했을 때 더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당시 내 나이 열여덟, 패션을 너무 좋아하고 관심이 많지만 그래 봤자 한낮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알라딘에만 들어가 봐도 패션 관련 업계의 전문가들이 쓴 책만 수십 권이다. 내가 패션 책을 쓴다고 해서 과연 누가 거들떠나 봐 줄까?
나는 결심했다. 그래도 나는 패션 책을 굳이 써내야겠다고. 내가 한낮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경험해온 패션이 있고 또 나만의 스토리가 있다. 나는 분명 전문가들보다 지식도 부족하고 전문성이 많이 떨어지지만 내 이야기와 나만의 팁들을 쓴다면 그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내 책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차게 시작된 책 출판하기 프로젝트는 장장 1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내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책을 출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의 수업과정 덕분이었다. 대학생들이 매 학기마다 수강 신청하는 것처럼, 우리 학교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학과 계열과 수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우리 학교에 진학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선택 수업 중에 책 쓰기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1년의 첫 학기에는 학기 내내 책을 쓰는 훈련을 하고,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책을 쓰는 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내 나이에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을 잘 알기에 뭔가에 홀리듯 수업에 신청했지만 훈련 기간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1학기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영성일기'라는 글을 작성해야 했는데, 매일 말씀을 한 구절씩 읽고 개인의 생각과 묵상을 한 페이지 분량 적어내는 것이 과제였다. 영성일기는 평범한 일기와는 다르게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의식과 분량을 무조건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더 쓰기 힘들었던 것 같다.
가끔은 이 과제를 처음 만들어내신 분이 누구실까 하며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학기 동안 반 강제적으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몸에 익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영성일기의 목적은 매일 좋은 글을 적게 하기 위함이 아닌, 매일 글을 적는 습관을 들이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1학기가 가고, 2학기가 왔다. 본격적으로 책을 쓰는 시간이 된 것이다. 아무리 내 이야기를 적는다고 했어도 책을 쓰기 위해선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패션과 관련된 기사와 블로그, 책도 여러 권 찾아서 읽었다. 타자를 쳐서 책에 들어갈 글을 적는 시간보다 정보를 찾고 글에 들어갈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책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것'이었다. 노트북이 있는 책상에 앉기까지 항상 많은 갈등이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나는 밥도 먹어야 하고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어야 하고 밀린 과제도 이만큼 있는데, 글은 내일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마감날까지 한참 남았는데, 주말에 다른 것 안 하고 글만 쓰면 이번 주 분량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글쓰기를 미룬 몇몇의 날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는 마감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글을 써야 했다..
글 분량을 확보하고 나서는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책의 제목, 표지와 작가의 말을 쓰고 정하는 작업은 이미 전에 다 생각해 뒀던 것이었기에 며칠 만에 끝났다.
교보문고에 필요 서류들을 업로드하고 완료를 누르자, 내 책은 그때부터 본격적인 출판 준비에 돌입하였다.
며칠 전에 내 책을 쭉 읽어보았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책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문장 구조나 책의 구성에 허점이 많이 보였다. 그 당시 내 책이 출판되고 나서 학교의 선생님, 선후배들은 물론, 주변의 여러 지인들도 내 책을 읽었다. 책 출판한 것을 축하한다고 글 잘 읽었다고 말해줬던 분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했다고 전하고 싶어 졌다.
책을 출판하면서 내 이름이 새겨진 책만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이후로 다른 작가님들의 책을 읽을 때면 작가 분의 시간과, 주변 여러 사람들의 수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책을 내 손에 받아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글을 쓰는 기쁨을 알았다. 소소한 일기만 쓸 줄 알았던 이전과는 다르게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들에 대한 묵상을 글로 적게 되었다. 누군가 시켜서 쓰는 것도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내 즐거움으로 글을 적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지금 나에게 삶의 활력소이자,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무엇보다 책을 출판하기 위해선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지나고 보니 내가 책을 쓰면서 배웠던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인스타로 시작해서 브런치까지 글을 올라게 된 계기가 책 출판의 경험으로 비롯된 것이다. 비록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조금은 엉성한 책을 출판했어도, 이 책 출판의 경험이 내 앞으로의 삶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는 언젠가 꼭, 내 이름으로 책을 다시 출판할 것이다.
한번 해봤는데 못할 건 또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