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하고 싶은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일을 잘해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해야 하는 공부과 생활, 그리고 건강 관리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나의 완벽 강박은 아마 고등학교 때 시작 된 것 같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던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가며 처음으로 중국어를 배웠다. 여러 과목 중에서도 특히나 영어를 싫어했던 나였기에 처음 중국어를 배울 때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언어 공부란 '지루하기만 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은 중국 언어 연수를 가게 되면서 180도 변하게 된다.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는 현지 선생님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고 과일 가게에서 복숭아 하나 사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매일 듣기, 쓰기, 말하기 공부를 하며 2-3주 정도가 지나고 나니 사람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자유시간마다 여행도 다니며 일상 회화에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언어가 익숙해지니 공부가 마냥 어렵게 느껴지기보다 흥미가 생기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처음이었다. 내가 기억 속에서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했던 첫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성취한 첫 경험이기도 했다. 나는 연수를 끝내며 중국어 자격증 4급과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주변사람들의 인정, 특히나 공부로 부모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세상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경험은 이후 나의 공부에 대한 태도, 크게는 삶을 사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놨다. 대학을 가며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에서 '공부를 잘하고 싶은 사람'으로 변했다. 과제를 낼 때에는 시간에 늦지 않게, 그리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좋은 결과를 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과 이를 통해 내 자존감 올라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지날 수 록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코너로 몰아세웠다.
과제가 조금이라도 늦는 것에 불안해하고, 제출 한 과제에서 점수 몇 점 깎이는 것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과제를 체크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수업 페이지를 확인하고, 그리고도 헷갈리는 것은 교수님께 바로 질문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때의 나는 이미 완벽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학교 1-2학년을 보내고 얻어낸 결과로 원하던 대학에 편입을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된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편입 시점부터 나의 완벽 강박은 단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편입 후 첫 학기 학점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대학에 가고 나서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때는 절망 그 자체였다. 당시에 "Economic Decision Analysis"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경제 전공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경제를 전공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지식도, 그렇다고 대단히 큰 관심도 없었던 나에게 이 수업은 큰 어려움이었다. 수업에서 기본으로 다뤄야 하는 프로그램 'R'를 전혀 다룰 줄 몰라서 매 수업 끝날 때마다 교수님을 찾아갔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성실하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겨우 F를 면하는 수준으로 학기를 마무리했다.
학기를 거듭할수록 수업의 난이도가 오르는 것에 비해 내 자신감은 뚝뚝 떨어지고 불안함만 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 이메일 알람 소리 하나에 화들짝 놀라고, 수업 페이지를 들어가는 것조차 심장이 벌렁거렸다. 과제가 늦지 않게 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던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잘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과 압박감에 사로잡혀 과제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학기 중에는 이러한 감정이 컨트롤이 잘 안 돼서 잠도 잘 못 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의 불안함이 정상이 아니고 바꿔야 하는 것임을 머리로는 인지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견디기 힘든 만큼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졸업이라는 목표까지 이를 악 물고 버텼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여름 계절 학기를 하며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대학 내내 그렇게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완벽 강박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이는 충분히 풍족할 수 있는 내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나를 어두운 곳으로 자꾸만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살면 된다. 더 잘하려고 더 좋은 성과를 바라며 미래에 목매지 않고, 지난 과거의 부족했던 나를 자책하지 않고 그냥 현재를 살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지나간 것을 후회하고 오지도 않은 것을 미리 불안해하며 오늘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살기로 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해낸 것을 뿌듯해하며 잠에 드는 것이다.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내 기준에 내가 미치지 못해도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이 또한 한 번에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일매일 시도해보려고 한다. 하루 안 됐다고 포기하지 않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쌓아보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다 보면 완벽하지 않은 나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