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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Jul 06. 2024

기억과 망각

중학교 2학년의 청춘이란

재작년 이맘때 즈음엔 늘 할 것 없이 습한 교실에 앉아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고 있었다.

공부를 하기엔 학구열이 그렇게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고, 친구와 만날 어울리기엔 친구가 그리 많지도, 체력이 썩 좋지도 못했다.

하루가 하루인지 모르고 시침과 분침이 교집합을 이루어 해가 넘어가는 그 경계선을 나는 시계로 삼고 그만그만 날이 가면 가는구나 여름을 허비했다.


그렇지만 마냥 또 얻은 게 없었냐 하면 그런 건 아니었다.

우선 초등학생 특유의 그 남아도는 시간을-요즘 애들(알파 세대라고 부르던가)은 없을 수도 있는- 무언가 읽는 데에 썼다는 것에서, 특히 십몇년전의 인기작을 완독 했다는 건 얻은 게 딱히 없음에도 사실 자체만으로 남은 삶에서의 후회가 하나 사라졌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눅눅한 침대 구석에 쪼그려 야음을 휘갈기고 있지만 그때는 사람이 많은 경험과 변화를 이루어서 그런지 참 건질 글감이 많았고, 그때의 나를 양분 삼아 지금의 나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그때의 내가 더 뛰어났던, 다시 말해 시대를 뛰어넘은 명작이 유독 많았다. 물론 연장자 입장에서 보면 도토리 키 재기겠지만.

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봐도 지금의 내가 한 5배는 나은 것 같다. 기억 속에는 나름 멋들어진 미사여구와 시조가 몇몇 개 있었는데 어디로 다 찢어져 버린 건지 내게 남은 건 오글거리는 표현들과 무슨 의미인지 모를-게다가 쓸데없이 긴-문장만 남아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기억은 원석 같다. 원석 그 자체는 돌멩이 같아서 모난 데 추한데 많지만 망각하고 또 왜곡하다 보면 어느새 광채를 뿜어내는 보석이 되어있지 않은가. 기억하니 이런 말이 떠오른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이라고. 이 말에 비동의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갖고 있어 봤자 불편한 뿐인 잿더미와 돌멩이들을 끌어안은 그 모습은 얼마나 비참한가. 기억은 수정하고 삭제해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과 제일 중요한 부분만 들고 다니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어제 읽은 책의 23쪽 4번째 구절이 뭐였는지 기억할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저주는 망각이라는 데에도 동의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산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원래 가장 빛나는 것만 들고 다니는 사람은 그 뒤에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내 가정사를 구구절절 써내리며 이 글을 우울증 호소글로 바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바뀌지 않는 사람이 바뀌는 사람보다 월등히 많다는 건 인정한다. 무언가는 반드시 바뀌어야 더더욱 나아지는 편이다. 기억이 그랬듯, 원석이 그랬듯.


하지만 바뀌어서 나아지지 않는 무언가도 있다. 나는 이 말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영원한 무언가에 열광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사랑에도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잣대로 사랑의 무게를 판단한다. 동화 속에서도 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답니다, 하고. 결혼식 때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하나의 삶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사랑도 있다. 전생에서 사랑했는데 현생에서도 다시 만나는 그런 로맨스물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이 사랑을 너무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랑은 인간이 아니라서 변한다. 언젠가는.


나는 늘 영원이라는 단어가 늘 입에 담기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찰나라는 단어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발음적 문제도 있지만, 뜻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앞에서 말했듯 사람은 긍정적인 것에 영원을 붙인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영-원. 참 보기도 좋고 말맛도 좋은 단어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낭만적이고. 찰나라는 단어는 영원보단 쉽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단순히 지나가버릴 뿐인 잠깐의 순간에 그런 어려운 단어를 붙여서 그 지나가는 약간의 시간을 그저 지나가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찰나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찰나라는 단어의 발음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느낌과 그에 연상되는 정신이 바짝 드는 느낌. 현재를 더 살아가게 하는 그 샤프함이 좋다. 그리고 찰나라는 순간도 좋다. 미적지근한 영원보단 그 순간순간에 압도되는, 망막에 새겨지는 그 바로 지금의 가장 자극적인 그 느낌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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