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둘이 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눈물을 두방울 흘린다고 두번의 슬픔이 사라지는 것도 두번 웃는다고 두번의 기쁨이 생기는 것이 아닌 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감정을 나눌까요. 이럴거라면 고이 접어놓아 날아가게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운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선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행동입니다. 오죽하면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운다같은 말이 있고 너 이제 한 학년 올라갔으니까 그만 울라는 말이 있을까요. 눈물은 흐르는 흰 깃발입니다. 누군가의 앞에서 얼굴을 발갛게 붉히고 운다는 것은 약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톱니바퀴가 되어 사회라는 시계를 돌리는 지금은 강자와 약자를 구분짓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없습니다. 윤활유래야 모를까 눈물을 흘린다고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눈물은, 슬픔은 집에 두고 옵시다. 눈가가 짓무를 때 까지 모아둔 눈물을 흘려 강물을 만듭시다. 아래로 흐르지 않는 폭포 없고 온새미로 타오르는 불꽃 없습니다. 그 사실을 남들 앞에서 내보이지만 말자는 말입니다. 다 압니다. 슬프면 눈물이 나고 기쁘면 웃음이 나는 거 압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다른 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슬픔은 혼자 먹어야 기운이 제일 잘 납니다. 남의 슬픔을 구태여 같이 먹는다고 당신이 기뻐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슬픔은 아주 많고 켜켜이 쌓여 혼자서 해결하기엔 모자르기도 합니다. 이런 눈물까지 혼자 흘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같이 먹어줄 다른 사람을 부르자는 게 아니라 버릴 봉지를 찾아오자는 말입니다. 사람은 사람마다 그릇이 다릅니다. 누구는 그릇이 아주 커서 홍해같은 슬픔에도 일어나는 반면 누군가는 슬픔이 아예 적어서 종지 그릇이 충분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겁니다. 특히나 요즘엔 각자의 슬픔을 쌓아 두는데에 바빠 남의 슬픔을 같이 먹어줄 다른 사람도 힘듭니다. 우리 마음이 그러는대로 슬픔은 먹을 만큼 먹고 버립시다. 봉투값 아끼다가 그릇도 사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