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연두 옷을 입을 때, 햇살이 가득 내려온 날,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에는 누군가가 그립고, 누군가를 그릴 때 그 손맛이 그리워진다.
더위가 막 시작되는 6월이면 가장 먼저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과실수는 매실이다. 초록 나뭇잎이 가득한 사이사이에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빼곡히 숨어서 익어가고 있다. 나무 근처에 가면 상큼하고 푸릇한 향이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손을 내밀어 한 알 따서 자세히 보니, 꽃샘추위를 이겨내려고 솜털 이불을 덮고 있었나 보다.
매실의 시큼한 맛은 위장의 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식욕을 돋운다. 배탈이나 위장장애도 없애 준다고 하여 봄이면 꼭 애용하는 제철 음식이다. 어릴 적부터 배앓이를 자주 하는 막내를 위해서 올해는 씨알이 굵은 매실로 장아찌를 담아볼 요량이다.
가장 먼저 수확한 매실로 준비한다. 커다란 함지박에 매실을 담고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려 살살 문질러 씻어 건져낸 뒤 소쿠리에서 물기를 말린다. 그사이 준비물을 챙긴다. 매실을 한 땀 한 땀 조각낼 칼, 단맛과 숙성을 도와줄 설탕, 매실의 수분을 살짝 날려줄 굵은소금, 잘 보관할 밀폐용기까지 내놓으면 준비 완료!
수분이 날아간 매실을 6~8 등분하고 매실 살을 발라내어 굵은소금을 솔솔 뿌려 4시간 동안 절인다. 이때 가끔 까불어 수분이 빠지도록 해야 한다.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매실과 동량의 설탕을 넣어 2~3일간 가끔 저어 설탕을 녹인다. 그대로 냉장 보관하면 1년이 지나도 오독한 매실장아찌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오독오독 매실장아찌를 씹을 때 엄마에게 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엄마는 나를 늦둥이로 낳으시고 일찍 치아가 빠져 틀니를 하였으나, 맞질 않는다며 그냥 잇몸으로 사셨다. 이 맛을 엄마에게 보여 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매실이 시어서 눈물 나는 게 아니라 엄마가 그리워 눈물이 난다.
1달 정도 지나면 수분이 빠진 매실이 배배 꼬이듯이 진액 속에 떠 있다. 이때 반드시 진액 그대로 냉장 보관한다. 우리 집에서 먹는 방법 몇 가지 소개해본다.
여름날에는 고추장과 참기름 한 방울 넣은 매실 무침 몇 조각 하얀 밥 위에 올리면 매콤 새콤 입맛이 살아난다. 나들이 가려고 김밥을 준비할 때, 매실장아찌를 재료 옆에 나란히 한 줄 넣어 싸면 그 맛이 일품. 소화를 도우니 배앓이 걱정도 없다.
감자가 많이 나오는 하지에는 감자와 계란을 넣어 샌드위치 속을 만들 때 매실을 숭숭 다져 넣는다. 색감도 아삭한 맛도 살아난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마늘 대신 매실장아찌를 고기 위에 올려 먹으면 식후에도 부대낌이 사라진다. 이렇게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매실장아찌를 어서 담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에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