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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마음 Aug 12. 2023

감자탕의 진한 국물에 녹아든 살뜰함

“엄마 이거 어느 식당에서 사 온 거야?!”

갑작스러운 딸의 문자에 ‘그렇게 맛있었냐‘며 무심한 듯 답장을 보내며 내 가슴이 뜨거워진다. 엄마의 손맛이 느껴졌다는 게지!

딸이 출산한 지 2달 가까이 되어간다. 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을 많이 받지 못했던 탓일까. 딸에게는 뭐든 다해서 먹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딸은 엄마가 힘들까 봐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늘 요구사항도 소소하다. 어쩌면 나의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았나 보다.


날이 맑은 휴일 오후 마트에 들렀다. 정육 판매대를 기웃거리다 제주흑돼지 등뼈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살이 두툼한 등뼈와 김치를 넣고 푹 끓여 감자탕을 만들 생각에 나부터 침이 고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빠르고 분주한 손놀림이 시작되었다. 먼저 등뼈를 찬물에 20분 정도 담가 핏물을 우려내야 한다. 냄비에 등뼈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감초와 말린 생강편을 넣어 물을 팔팔 끓였다. 감초의 달큰한 향과 생강의 알싸한 향이 주방을 채우기 시작한다. 핏물 빠진 뼈를 팔팔 끓는 물에 넣으면 고기의 붉은색이 변하여 거품을 일으킨다. 이때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내면서 2분 정도 데친 후, 고기를 바로 찬물로 가져가 불순물을 씻어내야 한다. 말끔해진 등뼈는 체에 건져 놓는다.


이제 김장 김치가 활약할 때다. 지난겨울에 담은 김장 김치통을 꺼낸다. 김치통 열어 묵은지를 한 포기 꺼내 양푼에 옮겨 담는다. 김치 냉장고에서 갓 꺼낸 김장 김치는 침샘을 자극한다. 맛있어 보이는 줄기 하나 쭈욱 찢어 고개를 젖히고 아삭 씹어 먹어보는 호사도 마다치 않는다.

김칫소를 대강 훑는다. 아! 아깝다. 김장할 때 하나하나 정성을 들인 속 재료다. 간 마늘 크게 한 수저, 신맛을 살짝 감춰줄 설탕 톡톡, 들기름 한 수저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그 사이 팔팔 끓는 물에 밑 손질한 등뼈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는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조물조물 무친 김치를 넣어 다시 한번 푹 끓인다. 된장을 한 수저 풀어주면 다른 간도 필요 없다. 1시간 끓인 다음 깻순이나 깻잎을 넣고 불을 끈다. 먹기 직전 들깨 가루를 뿌려 고소함을 더한다. 


잘 끓은 감자탕 절반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살코기가 두둑한 등뼈와 좀 더 부드러운 김치, 맛있어 보이는 감자를 골라 담는다. 우리는 또 끓여 먹으면 되니, 딸과 사위가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챙겨서 보낼 생각이다. 엄마의 정성을 고스란히 받은 기특한 딸이 어디서 사 온 거냐며 호들갑으로 화답하니, 덩실덩실 흥이 오른다.


나와 감자탕의 첫 만남은 95년 겨울이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입원하자, 시댁 형제들이 병원 문턱 닳도록 드나들었다. 남편을 병간호하는 나를 응원한다고 식사하러 간 곳이 감자탕 전문 식당이었다. 살코기만 먹던 나에게는 신선한 메뉴였다. 돼지 뼈와 우거지를 넣고 끓인 것에 감자가 들어 있는 것이다. 고기를 먼저 다 건져 먹은 후에 감자를 으깨어 밥을 비벼 먹으니 세상에 이런 맛이 있네,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5년이 흐른 어느 날, 옆집 사는 후배가 감자탕을 집에서 만드는 쉬운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감자탕은 잘 익은 김장김치를 푹 끓이기만 하면 되는 참 쉬운 요리다. 푹 무른 김치를 길게 쭉 찢어 한 입 크게 먹는 맛, 잘 익은 포슬포슬 감자에서 담백한 맛을 느끼며, 잘 어우러진 국물에 밥, 김, 깻잎이나 미나리 넣어 쓱쓱 볶으면 감자탕 냄비는 바닥을 보인다. 푹 우려낸 뼈 국물이 당길 때 먹는 우리 집 음식, 언젠가부터 감자탕이 엄마 손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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