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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자객 Aug 21. 2021

고양이의 초상

은지화 미술 동호회

그림은 사기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궁극적으로 그림이란 갖가지 물감의 오묘한 조합이며, 망막에 맺힌 색의 조화일 뿐이다. 아무리 멋진 그림도 결국 가짜다. 예컨대 실물과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물이라도 마실 수 없고, 탐스런 과일도 먹을 수 없다. 실체 없는 현상에 눈속임을 당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예술 일반으로 확장시켜도 똑같은 결론이 나온다. 물감 대신 언어를 사용한 가짜가 문학이고, 소리를 활용한 사기가 음악이고, 그럴싸하게 잘 짜여진 각본을 영상 이미지로 만든 것이 영화다. 그래서 예술 일반의 속성이 사기이며, 허상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허상이 실제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극지방의 오로라는 실체가 없어 손으로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더없이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오로라 같은 아름다운 가짜를 추구하며 열망한다. 이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실체로 가득한 현실의 환멸감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허상의 세계 속에서 난 자유로울 수 있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멋진 허상의 세계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이들과도 더불어 함께 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닌가! 그림과 함께 설레고 그리워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위대한 사기인가! 이 그림과 함께 행복한 사기에 기꺼이 속아줄 분은 조용히 감상하시면 그만이다.


https://cafe.naver.com/eunjihwa


● <고양이의 초상> - 호일아트(은지화), 28.5cm×30cm ~ 쿠킹 호일에 한지를 배접한 다음 다양한 독자적 기법을 써서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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