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어느 공간을 표류하던 설움 하나 내 몸을 빌어 환생했을지라도 너무 깊이 슬퍼하지 말 것이며, 어느 처마 밑 담벼락의 질경이처럼 손바닥만한 햇살 혹은 지붕에서 낙하하는 빗방물조차도 달게 마실 것이며, 기쁜 날이나 서러운 날이나 삶에 겸손할지어다. 너무 평범해서 망각하던 것들,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두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심장의 떨림으로 설레이는 것, 그리고 또 무엇ᆢ 어느 것 하나 기적 아닌 게 없으니 생존의 순간순간이 누군들 기적을 실현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이 기적의 환희를 동트는 아침처럼 새로이 기억해야 할 것이나 타성의 함정에 빠진 채 아무런 감흥없이 내 인생의 하루해가 저무는 쓸쓸한 저녁이다. 이런 밤이면 자기 별로 돌아간 어린왕자처럼 나도 내가 떠나온 별로 돌아갈 때까지 애틋한 그리움 하나 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내 그리운 사람과 취하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