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좋아지면 나이 든 증거라고들 하는데요. 전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어요. 봄이면 뒷산에 흐드러지던 진달래, 가을이면 냇가 뚝방길에 하늘거리던 코스모스. 대학 다닐 때 살던 자취집은 목련나무 집으로 불렸지요. 자취방 문턱에 턱을 고인 채 그 새하얀 순백의 꽃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무슨 마약환자처럼 환상적인 감상에 젖어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어느 때부턴가 연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는데요. 해마다 흐드러진 연밭을 보려고 벼루었지만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올해는 아예 꼬라지도 못 봤구요. 어쩔 수 있나요. 그림이나 그리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요. 이제 겨울의 문턱이니 올해는 글렀고, 내년을 기약해야겠지요. 뭐 그렇다고 내년엔 제대로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맨날 기약만 하다 기약없는 삶이 되면 어떡하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