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 형상이 가지는 의미는 무얼까? 현실의 재현일 때가 많지만 연상적 이미지나 일종의 기호로 작용할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 후자쪽을 선호한다. 현실을 재현하더라도 구도나 형태를 변형하여 나름대로 재창조한다.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맛이고 재미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초상을 꼭 닮게 그려야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박수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형상의 기호가 극도로 단순화되고 추상화되면 상형문자에 가까워진다. 형상을 잃을수록 상상력은 배가된다. 바스키아 풍의 낙서 그림이 가진 매력이다. 낙서같이 투박하고 거친 선들이 난무하지만 아무렇게나 그린 게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되고 의도된 것들이다. 이런 작품의 매력에 빠지면 그림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도끼자루야 썩든 말든 일단은 풍덩 빠져들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