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ㅡ
그 유명한 김춘수의 시 <꽃>의 한 대목이다. 오브제를 활용한 현대미술도 그렇다.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으로 가져와 <샘>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그것은 미술사에 큰 파장을 던진 화제작이 되었다. 하찮은 물건도 전시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작품이 된다. 이렇듯 작가는 조물주처럼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생명을 얻은 작품이 내게도 있다. 전시 방명록, 혹은 오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은지화 화면에 새겨 작품화시키는 것이다. 미술품 전시는 화가가 생산의 주체가 되고, 관람객이 소비의 객체가 되지만 이 작품은 화가가 소비의 객체가 되기도 하고, 관람객이 생산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은지화 제작을 체험하는 일종의 아트 퍼포먼스인 셈이다.나는 이것을 쌍방향 그래피티 아트라 이름붙일 생각이다. 전시장을 방문하시게 된다면 이름이든 싸인이든 그림이든 꼭 흔적을 남기시길 바란다.
작품1ㅡ지난 서울 아트쇼 때 방문객들이 남긴 흔적을 작품화시킨 것
작품2ㅡ지난달 서현도서관 강연 때 수강생들의 방명록. 가운데 큰 글씨로 새긴 조옥희는 한 수강생의 모친인데 거동이 불편하여 요양병원에 계셔서 이름만이라도 바깥 나들이를 시켜주고픈 아드님의 갸륵한 마음이 깃든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