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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자객 Feb 28. 2021

낮달

은지화 그리기 ㅡ 미술 동호회

어느 사이엔가 어둠이
머언 산 노을을 꺼무스레 물들여도
어머니는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려
화로에선 장국이 소리 죽여 끓었고
집 앞 감나무 아래에선
도시에 지쳐 돌아온 아들만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ᆢ<중략>

흙빛 어둠은 땅거미지는데
쉰살의 막바지 목숨처럼
못다맨 밭이랑 몇 줄을
기어이 매고서야
밭뚝길 어둠을 밟으려는지
어머니는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대학 초년생이던 스무살 즈음 쓴 시의 한구절이다. 첫 시집의 첫장에 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어머니는 쉰살이 좀 넘었을 텐데 막바지 목숨이라 표현한 걸 보니 웃음이 난다. 그 나이면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재밌는 건 이제 나도 그 즈음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는 거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세월은 무정하기 짝이 없다. 세월은 무정해도 인생살이는 유정하게 살아야겠다.

● <낮달> - 호일아트(은지화), 33cm×43cm ~ 쿠킹 호일에 한지를 배접한 다음 다양한 독자적 기법을 써서 그린 작품.

https://cafe.naver.com/eunji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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