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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상사는 없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한 글

by 슬기로운 주니작가

자동차 회사에서 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날이다.

주머니에서 연신 휴대전화가 울렸다.

고객사 담당자 전화였다. ‘받아야 하나?, 아니 조금 있으면 휴식시간이니까 그때 전화하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난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조금 있으니 팀장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자동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고객사 전화 왔는데 나하고 통화 안된다고 그 자료 혹시 보냈냐 ‘는 팀장 문자다.

‘ 그 자료 오늘까지 회신이라서 세미나 끝나고 회사 들어가서 보내겠습니다.’

라고 문자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다시 고객사 담당이 전화가 왔다. 이번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문자로 연락 바랍니다.’ 회신했다.

‘황 과장, 그 자료 왜 안 보냅니까?’라는 문자다.

‘그 자료 오늘까지 회신이고 지금 세미나 참석 중이라 끝나고 회사 들어가면 송부드리겠습니다.’라고 보냈다.

‘그거 할 사람 황 과장 밖에 없나요?’라는 문자에

‘네, 지금 다들 좀 바빠서 저 밖에 없습니다.’라고 보냈다.

이 문자가 사건에 발단이 되었다.

그 고객사 담당자는 우리 팀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개발팀원이 몇 명인데 그 자료 할 사람이 황 과장 밖에 없나요? 개발팀장이면 팀원 업무가 몰리면 팀원들 업무분장은 조절해서 분산시켜야 하지 않나요? “

내가 월요일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 중으로 자료 마무리해서 보고해야 하는데 자료 당장 보내라고 독촉한 것이다.

이에 우리 팀장은 그 고객 담당에게 처음으로 큰소리를 치게 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일정을 놓친 것도 아닌데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

“팀 업무분장 운운하면서 그렇게 뭐라고 하십니까?”

”일정도 맨날 빡빡하게 주시면서 진짜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큰소리쳤다.


고객 담당자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부품 품질이 자동차 품질을 좌우한다는 명분하에 부품업체를 들들 볶는다는 표현이 맞다.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품 품질이 개선되질 않는다.

자기가 해서 그래도 전체적인 품질이 향상되고 있다. 그러면서 부품업체 공정감사를 다니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부품 협력사들이 반박을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우리 팀장은 나를 대변하려고 했다.

그 담당자은 너무 황당하다며 기가 차다며, 또 왜 자기한테 소리치냐면서 이런 협력사는 없다며 노발대발하였다. 그 후로도 많은 욕(?) 같은 말을 팀장한테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회사 대표 메일로 메일이 왔다.


- 일요일 아침 8시까지 연구소 정문으로 대표이사 호출

- 사유 : 개발팀 대응 미흡, 개발팀장 자질 의심(고성 대응)

​​

나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첫 직장은 건축 자재를 만드는 회사였지만, 좋아하는 자동차 부품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자동차 부품회사는 젊은 직원들이 많았다.

직원들 중에 마음을 다 터놓고 사생활까지 공유할 수 있는 동료도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은 일 많이 한 기억 밖에는 없다.

회사에서 직위가 낮을수록 일은 몰린다.

특히 일을 잘하고 착한 직원들은 끊임없이 일이 밀려온다.

이 선배 일도, 저 선배 일도 어느 순간 내 일이 되어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이렇게 하다가는 일하다가 청춘을 다 보내겠다.’

‘무슨 방법이 없나?’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 첫째, 우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자.

- 그리고 시간 단위로 쪼개서 내가 하루에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자.

- 마지막으로 그 범위를 초과하면 정중하게 거절하자.

나는 이 결론을 실천하였다.

까칠해졌다는 평을 들으며, 일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점점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주어진 업무를 시간 내에 끝나니까, 일 잘한다고 평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지 못했던 결과다.

일이 너무 많이 몰려서, 정중하게 거절하기 시작하니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

​​그렇게 인정받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중에 생긴 일이다.



일요일 아침 8시까지 연구소 정문으로 대표이사 호출 이메일.


이 메일은 회사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우리 팀장은 나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했다.

결과는 대표이사 호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되었다.

나는 메일을 쓴 담당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에 전화했지만 담당 차장은 받지 않았고 난 문자를 보냈다.

'제가 세미나 때문에 대응을 잘 못해서 죄송합니다.’

‘자료 바로 작성해서 송부드리겠습니다.’

‘추가로 요청사항 있으시면 바로 적용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면 전화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는 연속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약 30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황 과장이 아무리 전화해도 소용없고, 일요일 아침에 사장님 연구소에 자료 가지고 오시라고 해요.

신차품질 방안 및 향후 개발팀 신규 project 대응 방안 자료 작성해서 먼저 메일로 보내고, 그 자료 가지고 사장님 방문하라고 하세요'"

난감하다.

고객사 담당하고 대화가 안 되면 바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

."차장님, 제가 미리 자료를 해놓고 회신을 줬으면, 이러한 사단이 안 났을 텐데 죄송합니다."

"차장님, 제가 세미나 도중에 나와서 전화 잘 받고 대응했으면, 차장님이 이렇게 화가 안 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실수를 인정했다. 그리고 인정에도 호소했다.

"황 과장 지나간 이야기 할 필요 없고, 자료 다되면 메일로 먼저 송부하세요. 끊습니다."

" 차장님이 이렇게 전화 끊으시면 저 이 회사 다니기 힘들어집니다. 제 인생에 영향을 주십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담당차장은

" 황 과장 나는 다른 사람 인생에 관여할 생각 없고, 관심도 없으니 그런 말 할 필요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끊어 버린다.

나는 낙담한 체 어떻게 해야지 이 난관을 풀어갈 수 있을지 생각 또 생각했다.

그렇게 고민한 지 한 1시간 정도 지나자 고객사 담당차장에게 전화가 왔다.

"황 과장 대표이사 호출은 됐고, 대책서 일요일까지 작성해서 보내세요. “

”그리고, 앞으로 누구 인생이 달렸다. 이런 말 내 앞에서 하지 마세요."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 실수인정, 인정에 호소가 통했다.

아무리 모진 사람도 실수를 인정하고 인정에 호소하면 결국 마음이 쓰여 한발 물러선다.

너무 자주 쓰면 안 되고, 정말 최후에 수단으로 인정에 호소해 보자. 그러면 통하는 경우가 있다.

일요일까지 대책서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공장장은 각 부서 팀장들 그리고 나를 주말에 불러 모았다.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수정 또 수정해서 대책서를 완성하고 메일을 보냈다.

담당차장은 자료에 만족해하였고, 그렇게 해서 그 일은 우선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일 이후 자료 요구는 더욱 기한이 짧아졌으며, 담당차장은 수시로 우리 공장장 하고 통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후에 나의 업무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로부터 메일이 접수되면 공장장은 회의를 소집했다. 각 부서 팀장들 그리고 나.

다시는 대표이사 호출 같은 일을 예방하기 위해 이제 공장장이 나선다고 했다.

담당차장이 메일이 오면 그 메일에 대한 회신을 위해 회의가 소집되었고 각 부서 팀장들이 모였다. 그리고 나는 그 회의에서 기록자로 내용정리 및 보고자 역할을 맡았다.

거의 매일 요구하는 자료에 하루 대부분에 시간을 써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주 동안 이러한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날도 담당차장 요구 자료를 회신하기 위해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공장장한테 나는 말했다.

"공장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황 과장 이야기해"

"아.. 네.. 단둘이 드릴 말씀이.."

다른 팀장들이 나를 한 번씩 쳐다보면서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공장장님.."

"어, 이야기해"

"이런 회의 이제 안 하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난 참아왔던 말을 결국 내뱉었다.

"어.. 뭐?"

"제가 이 회의한다고 다른 일을 못하겠습니다."

"담당차장이 공장장님한테 전화 안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메일 오면 제가 알아서 자료 작성해서 회신하고, 제가 알아서 답변하고 해서 절대 공장장님한테 전화 안 가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회의 없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 하! 하! 황 과장 바로 그거야!~, 내가 바라던 말이야."

"앞으로 나한테 전화 오게 만들지 마!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절대 공장장님한테 전화 안 가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공장장은 공장장실로 들어갔다.

그 후로 회의는 없어졌다.

난 담당차장 메일이나 전화 오면 최우선적으로 업무를 진행했다.

공장장한테 전화 안 가도록 정말 최선을 다했다.

피나는 노력 덕에 공장장과 담당차장과 연락은 끊기게 되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약 10개월간 그 고객사 담당자 개인 비서처럼 일했다.

팀원을 생각해서 대변했지만 문제가 커지니까 뒤로 빠져있었던 팀장...,

나의 일을 대신해 준다는 명분하에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공장장...,

그리고 나 때문에 일이 많아졌다며 나를 원망했던 다른 팀 팀장들….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만났으면 그렇게 나쁘게 생각 안 했겠지만, 직장생활이라 좋게는 안보였다.

그래도 우리 팀 선배 중에

"너는 그 담당차장이 요구한 거 먼저 해"라고 하면서 나의 다른 업무를 성심껏 대신해 준 선배가 있었다.

좋은 선배였다. 하지만 얼마 후 그분은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자기랑 안 맞다고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고 했다.

’ 좋은 사람은 회사랑 안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3개 회사 수십 명에 상사 중에 내가 판단하기에 좋은 상사는 딱 2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들은 직장생활을 짧게 하고 끝내셨다.

조직문화에서 아랫사람들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위에서 인정을 안 해주는 문화가 팽배하다. 인기관리한다고 핀잔 줄 때도 있다.

인기관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중해 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좋은 상사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입장이다.

일을 상세히 잘 가르쳐 주지만, 시시콜콜 관여하는 상사.

반대로 하는 일에 대해 믿고 거의 터치 안 하지만, 문제 생기면 책임 안 지고 쏙 빠지는 상사.

상사가 일찍 칼퇴해서 팀원들 눈치 안 보고 칼퇴하는 부서, 하지만 너무 일을 안 해서 월급만 축내는 상사.

본인이 너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직원들이 맨날 퇴근할 때 눈치 보는 부서, 하지만 팀원들 일을 덜어주는 상사.

일을 너무 잘해서 배울게 많은 상사지만, 승진에 너무 집착해서 주변사람들에 평판이 안 좋은 상사.

성격이 좋고 평판도 좋아서 회사 다른 부서와 사이가 좋아 업무 처리가 빠르지만, 정작 자기 팀원 커버는 안쳐주는 상사.

이렇듯 한쪽이 좋으면 다른 한편으로는 불만족일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다.


우리가 다니는 회사에서 좋은 상사를 기대하면 욕심일 수도 있다.


부하직원이 보는 좋은 상사는 과연 어떤 상사인가?

그러한 좋은 상사는 왜 거의 찾아보기 힘들까?

그러한 사람은 왜 직장생활을 오래 못 하는 것일까?

지금 책임자 위치에 있는 나는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은 ‘좋은 상사도 없지만, 좋은 부하직원도 없다’


우리 직장에 좋은 상사, 좋은 직원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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