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시기에 경제활동이 어렵고
목돈의 병원비가
자주 드는 엄마.
아빠는 외벌이로 자녀 교육비 . 식비. 주거문제. 다 해결야만 한다. 당연히 주거는 가장 후순위
우리는 전세집. 월세집을 자주 옮겨 다녔었다.
초등학생시절 우리는
가방 좁고 허름한. 화장실이 집안에 없는 비위생적
재래식 화장실. 그리고 분리된 공간이 2개인 집에 거주하였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가장 숨기고 싶었던건 허름한 집이었고.
두번째로는
허름한 옷차림. 왜소한 몸집.아파하는 엄마였다..
나는 수업 종례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친구들이 보이지 않게 가장 먼저
집으로 달려가거나 숨었다가 들어갔다.
짖궂은 남자친구들은 내집을 알아내겠다며
자전거로 쫒아 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끝내 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우리집이 어디인지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느낀 어린 아이의 감정의 연장선으로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감정은
아이들에게 감사편지를 계속 쓰도록
무언의 강요. 봉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계속 아이들 사진을 찍는 것. 찍어 대는 것을
그냥 바라봐야하는 것. 호기심과 선의의 눈으로
들어오는 선들을 긋기 애매한 것들.
나는 그러한 것들이
평범한 아이가 아닌
시설에서 사는 아이임을
재차 확인.낙인 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치 아늑한 내 공간. 유일하게 숨어서 쉴
안식처. 숨기고 싶기도 한
내 집을. 아이들의 집을
사람들이 계속 들춰내는 기분이 들어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이
자주 올라왔다.
마치 내집을 알아내겠다면서
자전거를 타고 쫒아오던
짖궂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