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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태 Jul 07. 2021

권위주의 일갈

권위의식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정의한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권위의식에 집착한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가치 인식이 낮기 때문에 외부에서 그 가치를 찾으려 부단히 애쓴다.


이들은 직책이나 자리, 학력 등에 권위를 부여한다. 권위의식이 강할수록 권위가 있는 쪽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 그리고 권위가 있는 기준을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들은 높은 직책이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정답이고 옳다고 믿는다.


게다가 본인이 권위를 부여했다고 하면 그들을 향해 쉽게 화를 내지 못한다. 만만하고 낮은 직책의 사람들에게만 화를 낸다. 같은 사안에도 권위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이들의 자가당착은 일상이다.


이들은 외부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한다. 사안에 대한 본질적인 파악과 해결책은 딴나라 이야기다. 이들은 오로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표면적인 원인만 본다.


예를 들면 어떠한 모임 자리에서 자신의 권위가 지켜지지 않으면 불쾌하다. 자신의 권위를 지켜야 하는데 주변인이 자신에게 (자신의 기준으로) 권위를 지켜주지 않고 소홀했다 판단하면 화를 낸다. 이 경우에도 그 주변인이 권위가 있는 인물이냐 없는 인물이냐에 따라 화를 내거나 그냥 넘어가거나의 차이가 반드시 있다.


고작 사무실 한 층 아래에 있는 의무실에 다녀올 때도 본인의 귄위를 위해서 수행직원을 대동해야 하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진료시간에도, 고작 한 층 위에 있는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 용무를 보지 못하고, 본인의 권위를 위해서 그 직원은 의무실 문 앞에서 진료를 마칠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이 사안을 본인들이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과잉의전에 젖어있구나 라고 성찰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또 이들은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싸가지가 없다거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거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거나 따위의 측정 불가능한 척도를 가지고 비판한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에 불만을 제기하고 조직의 개혁을 부르짖는 자들을 예의가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본질을 따지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부정적이고 피곤하게 사냐며 타박한다. 그야말로 피상적인 시각에 젖어있다. 이들이 극단적으로 갈 경우, 피해자들에게 도리어 네가 잘못했다고 떠넘겨버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예를 들면 왕따에게,


네가 뭘 잘못했으니 당한 것 아니냐?
장학금을 못 받으니, 등록금이 비싸다고 불만 가지는 것 아니냐?
무능력해서 식민지가 된 거 아니냐?


심지어는 

행실이 조신하지 못해 성폭행을 당하는 것 아니냐?


와 같은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경악스러운 실제사례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결과를 가지고 본질을 왜곡해버린다.


같은 맥락으로, 사회적 문제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악행이나 범죄가 심해지면, 범죄를 가속화 시키는 사회시스템을 문제 삼지 않고, 그 개인이 사회에 반항하는 것이라 인식한다.


이렇게 본질을 파고들지 않는 피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참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인식한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보려 하지 않고 그저 본인들이 보고 배운대로만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것이다. 합리적 제안을 통해 효율적인 일처리와 성공보다 그저 권위가 주는 대로 일하면서 불만을 표하지 않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권위의식과 피상적인 시각은 윗사람의 잘못이나 부당함에 저항하거나 항거하지 못한다. 윗사람이 잘못했다는걸 알아도, 묵인하고 인정해준다. 그쪽에 권위가 있다고 인식하니 거기에 맞춰야 한다.

또한 윗사람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권위의식이 강할수록, 자신이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한다. 자신이 아래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윗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인식들은 노예근성이다. 미국이 돈에 대한 권위의식이 강해, 천민자본주의가 발달했다면, 우리는 돈, 권력, 나이, 직책 등에 다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들을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이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의도하고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권위의식이 강하고, 권위를 부여한쪽에 고개를 숙이기 때문에 이들은 무의식에서부터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근대적인 사회풍토가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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