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기로 인생 배우기 > 1편
달리기를 좋아한다.
러닝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년이 채 못 되었을까? 하지만 하루만 걸러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경력은 짧지만 그래도 제법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낸 듯싶다. 이제는 러닝이 거의 나의 루틴이 되었다고도 자부하는데 내가 그렇게 믿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년여간 꾸준히 달릴 수 있었던 원천, 즉 운동의 동기가 아주 단단히 자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억지를 써가며 꾸역꾸역 달리지 않는다. 때 되면 밥을 먹는 것처럼 퍽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달리기가 정말로 고파서 달리고 있다.
달리기는 일단 밖으로 나와 땅 위에 서기만 하면 성공하는 운동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고서야, 달릴 땅을 눈앞에 두고 도로 마음을 접는 일은 흔치 않다. 몇 킬로가 됐든, 몇 분이 됐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시작하면 어쨌든 달리고야 마는 것이다. 러닝이 습관으로 자리하기까지,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던 지점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옷을 갖춰 입고 현관문 앞까지 서는 고작 그 몇 걸음이 세상 어려웠다. 다른 모든 운동도 그렇겠지만, 나의 경우 달리기가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지금 당장 달리러 나가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달리기의 전 과정 중 가장 큰 의지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과정인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문밖을 나선다. 무릎이나 발목의 통증, 태풍 혹은 폭우 같은 그야말로 '뛸 수 없는'상황이 내 발목을 붙들지언정, 스스로 만들어내는 궁핍한 이유 따위는 없다. 한 겨울 눈이 오거나 영하권의 날씨에도 나는 어김없이 뛰러 나갔고, (실제로 나는 여름보다 겨울의 러닝을 더 좋아한다.) 한여름 폭염에는 이른 아침, 혹은 밤시간을 선택해 뛰었다. 병원이라면 일단은 미루고 보는 내가, 러닝에 영향을 주는 통증이 생기면 재빨리 병원을 찾았다. 오래된 신발을 바꾸고, 마사지 시간을 늘리며 어떻게든 다시 저 문밖을 나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쩌다 내가, 그것도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이 나이에, 이토록 러닝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달리면 좋은 점은 많다. 체중 감량, 체력증진, 무기력 극복,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효과들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불어난 체중을 해결할 요량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뛰면 큰일 난다는 주변의 훈수들이 두렵기도 했지만, 달리기로 체중이 훅훅 줄어드는 지인의 변화를 보자 해보자는 마음이 더 크게 일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로 몸이 가벼워지고, 볼록 나왔던 아랫배가 정리됐다. 빠르게 달라지는 몸이 신기했고 그 맛에 더 열심히 달렸다. 달리면 체력도 좋아진다. 뛸수록 에너지가 고갈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아돌아 나른하고 쳐지기 쉬운 일상에 활력이 생긴다. 이 외에도 러닝의 좋은 점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를 저절로, 계속 달리게 한 동력은 아니었다. 저 위의 효과들이 나로 하여금 달리기에 눈뜨게 했다면, '당연하게 달리는 오늘'을 가능하게 한 동기는 사실 다른 것이었다. 그건 어떤 '효능감'같은 감정이었다. 나는 달리는 내가 좋았고, 그런 내가 참 괜찮아 보였다.
나는 달리며 삶의 주인이 된다. 이 거대한 지구를 오직 내 두 다리만으로 쉬지 않고 밀어낼 때의 나는 더 이상 작고 흐릿한 존재가 아니다. 내 의지로 앞장서서 삶을 이끌어 가는 항해사,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달리기는 두 다리가 유기적으로 얽혀 움직이는 운동이다. 일단 달리기 시작한 두 다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많이 뛰는 날이 있는가 하면, 컨디션이 안 좋아 적게 뛰는 날도 있다. 그런 달리기 속에서 나는 지난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나로 다시 설 용기를 갖는다. 못마땅한 내가 있으면 근사한 나도 법이라는 인정과 수용, 미흡한 날들을 조금 더 나은 날들로 바꾸기 위한 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력 같은 것들을 배운다.
욕심을 부리면 득 보다 실이 많은 것이 달리기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거리와 속도를 욕심내면 반드시 부상이 찾아온다. 그도 아니면 너무 많은 체력을 소진한 탓에 며칠간 늘어진 일상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자기 속도에 맞춰 차근차근 꾸준히 달리는 날이 쌓이면 기록과 거리는 절로 는다. 이런 달리기의 순리를 경험하며 나는 삶에서 가져야 할 태도를 배운다. 무엇이든 건너뛰지 않겠다는 성실함, 진득이 인내하는 꾸준함, 그리고 욕심부리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배운다.
혼자만의 달리기에서 정해진 결승선은 없다. 내가 마음먹는 그곳이 바로 결승선이니까. 더 할 수 있다면 더 뛰는 것이고, 여기까지가 충분하다 싶으면 거기가 그날의 결승선인 것이다. 내 삶의 도착점을 타인들의 기대, 막연히 아득하고 먼 그곳에 두지 않겠다는 결심, 흔들림 없이 나 자신의 상태, 감정들에 집중하며 굳건히 밀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되새긴다.
쿵쿵쿵 규칙적으로 들리는 발소리, 자진해서 흘리는 땀방울,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결에서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고, 이렇게 대견하게 내 삶을 이끌어 가고 있구나 느낀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선 기분, 그 희열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비록 거대한 자연 속 한낱 미미한 존재라 할지라도,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해내려, 내 삶을 살아내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뿌듯하다.
달리기를 지속하는 한 나는 끝없이 다시 설 것이다. 모든 날의 나를 용서할 수 있고, 모든 날의 나를 희망할 수 있을 테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달리기는 내가 내 손을 잡는 행위다. 다시 나로 서자고, 앞에서 이끌어가자고 건네는 손길이다. 마흔의 나를 다시 달리기해 준 고마운 달리기. 내일도 나는 저 문 밖을 나설 것이다. 끝없이 내게 손을 내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