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픈 얼굴

보통 엄마의 기록

by 전유정

아이의 활짝 웃는 얼굴이 가슴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엄마가 되고 알았습니다. 구겨지고 빛바랜 어른의 마음을 마주하기 미안할 만큼 맑고 환한 얼굴. 그걸 보고 있노라면 가슴 저 아래 밑동이 쿡쿡거립니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행복하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충만한 마음 중 하나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더군요. 정확히 아프다고 느끼는 어떤 지점이 있었습니다.

아장아장 걸으며 혀짧은 소리를 내던 시절, 햇살처럼 웃는 아이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더 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분명 최선의 나를 갈아 넣고 있었음에도 지나고 나면 언제나 못 해준 것, 부족했던 것들만 떠오릅니다. 한없이 미안해집니다. 그 죄책감이 솜털처럼 보송한 사진에 가득 담겨 나를 덮칩니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에게 나는 뭘 그렇게 많이 바라고, 무엇을 그리 노여워했을까요. 날카로운 어미의 화살을 영문도 모르고 받아내었을 천사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름 좋은 엄마로 살고 있다고 믿었던 오늘이 매번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직장일에 출간에, 거기다 다 늦은 자기계발까지 더해 한창 정신없던 일상을 살던 때였어요. 퇴근 후 마주한 아이들 얼굴이 푸석해보여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지런을 떨어 저녁을 차렸어요. 그래봤자 평소보다 한 두가지 반찬이 더 올라왔을 뿐, 소박하기 그지 없는 밥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두 아들녀석은 엄지까지 치켜들며 환히 웃더군요. 역시 우리 엄마 요리가 최고라는 과분한 아첨까지 덧붙이면서요. 그래도 양심은 있는 엄마라 가슴이 쿡쿡 찔렸습니다.


요리에 별 흥미가 없습니다. 어떤 주부가 흥미로 요리를 할까요. 모름지기 엄마라면 의무에 가까운 일일텐데도 나는 하루하루 떼우듯 넘겼습니다. 사실 흥미를 떠나 시간이 너무 아깝더군요. 힘들게 만들지 않아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고,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핑계도 한 몫 거들었어요.


‘뭐 하러 이리 사는가.’


뭐가 좋다고 저리 환하게 웃는지. 괜한 죄책감에 면목 없어진 나는 그간 한창 살 만하다고 여겼던 일상에 또다시 변덕을 부렸습니다. 이렇게 남김없이 소진하며 사는데, 과연 내 삶은, 우리의 삶은 정말 나아지고 있기는 한 걸까? 저렇게 환한 아이의 얼굴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엄마가 정상인가? 잘살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집니다. 대차게 세워둔 삶의 목적이 당장 눈앞에 놓인 애달픈 내 자식 앞에서 한없이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집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대도, 여자의 삶이란 무릇 아이와 가족에게 털어 넣을 때라야 가장 의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또 방어할 새도 없이 파고듭니다. 출구 잃은 질문의 반복, 틈만 나면 비집고 올라오는 죄책감, 씩씩하게 잘 살다가도 별안간 또 한 번 세게 휘청거립니다.

끝이 뻔한 변덕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나는 또다시 닳지도 않는 희망을 품고, 새로운 하루, 더 나은 하루를 살려고 애를 쓰겠지요.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해가며, 과할 만큼 앞만 보며 살다가 별안간 어느 날에는 또 이렇게 정신이 번쩍들 것이고, 똑같이 미안해하고, 휘청댈 것입니다. 아빠들은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기 삶에 대한 죄책감. 어디서부터 시작된 잘못인지 생각했습니다. 가족 탓은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흔한 핀잔 한번 준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홀린 듯 다 늦게 삶에 열을 올리고, 그러면서도 괜한 눈치를 보는 내 탓일까요? 아니면 오랜 시간 여성에게 터무니없는 책임의 굴레를 씌워왔던 이 사회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요? 얼마나 더 많은 세대가 이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야만 끝이 날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야 ‘엄마로서의 죄책감’이라는 말이 엉뚱한 소리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주춤대는 엄마의 일상에 반해 아이의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겠지요. 지금 내 앞에서 활짝 웃는 이 녀석의 얼굴이 눈 한번 깜빡하면 또 한 발짝 뒤의 과거가 될 것입니다. 이 얼굴 안에 곧 사라질 아이가 있어 슬프고, 먼 훗날 지금을 그리워하고 후회할 주름진 내 얼굴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웃는 얼굴이 이렇게나 아픈가 봅니다.


또 한번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합니다. 오늘 환한 아이의 얼굴이 분명한 과거가 된다는 것은, 아이의 삶도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일 테니, 키가 자라듯 아이의 마음도 똑같이 자라지 않을까요? 늘 후회하고 다짐하고 다시 후회하는 미련한 엄마일지라도, 그런 엄마를 대견하다 여길 눈이 아이에게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어떻게든 제 삶을 살아보겠다 애쓰는 한 사람을 보는 눈이요.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아픈 얼굴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덜 미안해하자고, 눈매, 입매, 목소리 하나까지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글로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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