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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포지션

by 재섭이네수산

나는 산만한 편이다.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엄청난 몰두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집중을 요하는 일을 할 때는 나와 상관없는 이슈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특히나 용감한 형제들이라는 수사 예능을 좋아하는데, 보고나면 불쌍한 피해자들이 떠나지 않고 자꾸 내 마음속을 떠돌아다니는 후유증이 있어 일부러 사랑하는 TV와 안녕을 한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끊었던 TV를 틀고 싶을 정도로 심란한 날이었다. 어제 오늘 하던 일이 잘 마무리 되지 않아 매우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러할찐대 세상이 또 너무 심란해서 틀었던 TV와 라디오를 다시 꺼야만 했다.



우리는 팀으로 일을 하는 직업이라 한 팀이 꾸려지면 사람마다 주어진 자기 포지션이 있다. 마치 자동차부속 같달까? 나사 하나 제대로 안 쪼이면 고장나버리는 기계처럼 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해내주지 못하면 모든 일에 빵꾸가 나버리고 만다. 오늘이 그랬다. 3일 추위를 이겨가며 했던 힘든 일에 자그마한 실수 하나가 재를 뿌려 미수금을 받지 못하고 날아가버렸다. 그러다 때때로 서로의 잘못을 탓하다 마찰이 일어나곤 하는데, 오늘 그 마찰이 큰 싸움으로 번져 우리 팀원들 모두 힘든 하루였다.



종종 다툼이라는 것에 원인이 내가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다툼의 공을 넘길 수도 있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만, 나는 분명하게 내가 잘못했다 말로부터 인정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내가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린 끝에서라도 나또한 잘못했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그렇게 인정을 해야 마음이 편하고, 그래야 내가 한단계 성장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장했느냐? 그렇지도 않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면 나는 참 많은 실패를 했고 그 많은 실패 끝에 얻은 것이 참 많았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때가 더 많은 진짜 실패자다. ^^ 진로에 관한 한 가지만 보아도 펜대와 기름밥 중 내 진로를 결정할 때 나는 펜대를 잡고 있으면 기름밥을 동경하고, 기름밥을 먹고 있을 땐 펜대 잡은 때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는 방랑자 아니던가.


갈팡질팡하고, 역마살이 껴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해서, 어른들로부터 이제는 한 곳에 정착 좀 하라는 조언을 참 많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게도 어느 자리에 있어도 꼭 가고 있지 않은 다른 쪽을 바라봤고, 그결과 나는 자의로도 오랜 기간 방황을 했다. 내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이라는 곳에서 나의 포지션은 부인이다. 아내라고도 한다. 집사람이라고도 하더라. 때때로는 마눌님도 되겠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만난 남편에게 작은 실수로 트집을 잡아 싸움을 하고 말았다.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흔한 유명 연예인들의 이혼 사유가 떠오르는 저녁이었다. 집에 들어와서조차 우리는 평온하지 못하고 쌈닭으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장미의 전쟁을 치뤄냈다. 이 자리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사실 받지 못한 돈이 머리에서 맴돈다. 실수한 다른 사람을 원망도 해본다. 보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도 해본다. 누구 하나 찾아내지 못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원망 해보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씨를 원망해보고, 날아가버리도록 관망했을지도 모를 경련 일어난 내 눈을 탓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분주한 마음 달래려 글을 끄적이던 저녁 늦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루종일 입맛이 없어 커피 한 잔만 했더니 토기가 일어나고 지금 손발이 막 떨린다고 말이다. 목소리가 히마리가 하나도 없는 것이 당장 쓰러지시는 게 아닐까 너무 깜짝 놀랐다. 나는 금방까지 받지 못한 돈으로 심란했던 마음이 확 사라져버리고 덜커덕 겁이 또 났다. 이러다 조만간 딸이라는 내 자리 잃어버리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잘한 것도 없는 딸이라는 이 자리 잃고,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회환으로 가득찬 나날들 되기 전에 내일은 엄마 입맛에 잘 맞을 무언가를 찾아내서 사드려야만 한다. 지켜내자! 딸이라는 내 자리.



방황의 세월의 끝을 오늘로 삼는다면, 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 하나 새겨놓고 가야할 것 같다.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자리이니까.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실력을 키워 지켜내자.



엄마가 드시기 좋을만한 음식을 또 검색하고 자야겠다. 일요일이지만 내일도 나는 일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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