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에서>
토요일 오후였다. 날도 흐리고 쌀쌀하니 곧 비가 내릴 기세였다.
주말이지만 그런 거 가리지 않는 우리는 남양주 시청에 보수를 해주러 다녀왔다. 이것저것 짐을 잔뜩 들고 밖을 나서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더 바삐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주말이기 때문에 주무관님들은 모두 당직실에만 계셨고, 입구도 그쪽만 열려있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당직실을 지나쳐 유리문을 당겨서 열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지팡이를 짚은 연세 가득한 어떤 할머님께서 계단 아래 서계셨다. 올라오시려나보다 싶어 닫힌 유리문을 다시 열고 있었는데, 예전 우리 외할머니처럼 허리가 굽고 지팡이를 짚은 모습에 내가 시선을 두었는지 할머니께서 나보고 "여기 직원이에요?"라고 물으셨다.
난 좀 당황하며 "아닌데요."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내게 호소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우리 집 앞에 개가 자꾸 똥을 싸고 가. 내가 지금도 치우고 왔는데, 개똥을 못 싸게 경고문을 써줘. 벌금 20만 원. 이렇게."
이러시는 것 아닌가? 아이고 내가 직원이 아니라고 했는데 잘 못 알아들으셨나 보다 싶어
"죄송한데 전 직원이 아니라서요. 토요일이라 여기 당직실로 가시면 직원분들이 계세요."
그랬더니
"내가 이 높은 계단을 어떻게 올라가?"
하셨다.
어쩌지? 순간 비도 오고 짐은 많고 나도 갈 길이 바빴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세요~ 하고 싶었지만 얼마나 힘이 드시면 직원이 아니라고 하는 내게 호소를 하고 계실까 싶어 마음이 약해졌다. "아 ~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직윈분을 불러드릴게요." 그러고 들고 있던 짐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얼른 당직실로 뛰어갔다. 당직실 출입문은 유리문이라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컥 문을 열고는 안녕하세요~ 했다. 거기 계신 모든 주무관님들이 나를 주목했다.
"주무관님~ 어떤 할머님께서 본인 댁 앞에 개가 똥을 싸놓고 간다고 민원 넣으러 오셨어요. 나가봐 주시겠어요?"
주무관님들은 모두 상황파악이 안 되시는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고 계셨다. 나는 거듭 말했다.
"아~ 이 앞에 할머니께서 오셨는데 계단이라 못 올라오신다고 하셔서요. 개똥 민원을 넣으러 오셨대요. 어느 분께 말씀드리면 될까요?"라고 다시 상황 설명을 했더니 어떤 주무관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물으셨다.
"본인 댁 앞에 개가 똥을 싸놓고 가는데 안 치워서 계속 할머님이 치우고 계시대요. 경고문이라도 붙여달라시는데, 한 번 만나주시겠어요?"라고 재차 삼차 상황 설명을 했다. 마침내 세 분이나 밖으로 나와주셨다.
주무관님들보다 앞서 나온 나는 할머니께 "지금 주무관님들께서 나오실 거예요. 말씀하시면 됩니다. 저는 가볼게요."라고 인사를 드리고 짐을 바리바리 들고 바쁜 걸음을 옮겼다. 차에 짐을 싣고 뒤를 돌아보니 주무관님께서 나오셔서 할머님의 민원을 듣고 계셨는데, 금세 이야기가 끝나고 할머님께서 발길을 돌리셨다.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무관님 한 분은 들어가시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을 쳐다보고 계셨다. 안전이 걱정되셨던 건 아닐까?
나는 반려인이다. 나이 지긋한 노령견과 함께 사는 반려인이다. 강아지들에게 산책은 만병통치약 같은 거라 요새는 강아지 산책 문화가 전방위적으로 정착이 되어 있어서, 길을 다니면 어느 곳을 가든 각종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고 있는 반려인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이 나는 너무 보기 좋아서 종종 나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강아지에게 시선을 빼앗겨 가만히 바라보고 서있다가 많이 정신 차리라는 욕을 먹곤 한다.
보기 좋은 모습 뒤에 개똥 뒤처리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였다.
나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강아지 산책 시켜주기의 마지막은 개똥 치우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주 아주 아름다운 반려인과 반려견의 산책 문화가 아닐까 한다.
겨울에 쌓인 눈 밑에 개똥을 숨기지 말자. 봄 되면 눈 다 녹을 텐데, 그 뒤에 나오는 개똥 밭을 상상해 보라. 그래서 ㄱㅅㄲ라는 욕이 있는 거라는 꾸지람의 소리 들어 마땅해진다. 배변봉투 가지고 나가 꼭 똥은 자기 집으로 가지고 오고, 산책 시 보행하시는 분들이 우선이니 앞이나 옆에 보행자분들이 있으면 항상 비켜주는 훈련은 기본적으로 잘 가르치자. 온 동네에 마치 개가 살지 않는 것처럼, 개가 산책 나온 건지 안 나온 건지 모르도록 뒤처리를 잘하는 반려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욕먹어도 싸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같은 반려인들 다 같이 싸잡아 욕먹이고, 앞으로 반려인들이 발 디딜 곳이 점점 좁아질 것이 자명하다.
"개소리 좀 안 나게 해라~~"와 같은 맥락으로
"개똥 좀 안 보이게 해라~~" 들어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