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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감을 찾아서

by 재섭이네수산

내게는 아직 살아계신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사실 친 할머니는 아니고, 이모할머니라고 부르는 할머니인데,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다. 사연을 말하면 길기 때문에 생략하고, 이 분의 집에 땔감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듣게 되었다. 가까이 사는 가짜 손주 놔두고 왜 다른 분들께만 이 얘기를 하셨을까? 나는 걱정이 앞서다가 섭섭함도 같이 곁들여 문자를 날렸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있다 일 끝나고 땔감 가지고 갈게요."


며칠 전에 이사를 하며 오래 된 가구를 정리하였다. 남편이 공구 쓰는 걸 좋아해서 딱지 붙여 버리면 될 가구들을 하나씩 부수고, 아궁이에 넣을만한 크기로 잘라 자루에 담길, 열흘 정도, 일 끝난 밤마다 하느라 남편이 허리가 아프고 몸이 너무 피곤하다고 하였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님에도 남편이 일만 하기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꾸준히 이렇게 가구를 땔감으로 만든 이유는, 다 이 이모할머니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성어린 마음과 노력을 알기에 오늘 먼 길을 함께 하는 것에 불평은커녕,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치하하며 오늘만은 기꺼이 그의 입에 커피와 빵을 넣어주었다. 참 다각도로 매력적인 남편이다.


화목보일러가 있는한 땔감은 계속 필요할텐데, 노인 두분만 계시는 그 시골에서 어떻게 계속 나무를 구하실까 걱정이 앞선다.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보았으나 돈을 지불하지 않고 그 많은 나무를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고, 돈을 낸다 해도 나무꾼이 되어 자르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자신이 있느냐는 물음에 합죽이가 되었다. 합!

​이리저리 알아보니, 정자를 철거하는 업체에 연락하여 나무를 구한다는 분도 계셨고, 쿠팡에서 장작을 구매해보라는 분도 계셨고, 1톤에 15만원 주고 사면 된다고 하는 분도 계셨으며, 철거 업체를 알아보고 폐자재라도 구해보라는 분도 계셨다. 여기저기 제보가 이어졌는데, 감사하다는 말씀 전한다.


작년에는 가평의 어느 팬션을 갔다가 나무가 담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팬션 사장님께 저 나무들 다 쓰시는 거냐고 여쭈어보았다. 화목보일러를 설치해서 땔려고 장작으로 만들어놨는데, 설치 안하기로 해서 나무는 그냥 몇년째 쌓아둔 것이니, 만약 필요해서라면 가져가도 된다고 하셨다. 정말 많았다. 그래서 공짜로 (사실 차 타고 왔다갔다 옮기는 데만 며칠이 걸렸지만 나무가 정말 실했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1톤 트럭으로 몇 차를 해서 날랐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한 해를 잘 버텼는데, 다시금 겨울이 왔다. 이번엔 신경쓰지 말라고 하셔서 정말 신경을 너무 안 썼더니 창고 가득 차 있어야 할 나무들이 텅텅 비어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아있는데, 아~ 눈물이 핑돌았다. 그럼에도 신경쓰지 말라고 내 등을 쓰다듬으시는 할머니 때문에 하마터면 또 갱년기 눈물바람 할 뻔했다.

​할머니 댁에 있는 백구가 아프다. 작년에 뱀에 물려 죽다 살아난 13살 진돗개인데, 올해를 넘기기 힘들어 보였다. 닭, 소고기, 계란 등등 좋다하는 것 다 삶아주었는데도 바짝 마르고, 비틀 비틀 걷는 상황에도 우리 차를 알아보고 꼬리를 치며 가까이 와서 만져달라 머리를 내미는데, 아~ 또 눈물바람 될 뻔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 백구 몸보신하라고 황태 시켜주는 일뿐이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염황태를 주문하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변의 많은 아는 것들과 작별 인사를 고해야 하는 시기가 조금씩 빠르게 가까워져 오는 사건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동안 시무룩하게 차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보면 천천히 가는 것 같고, 가까이 보면 빠르게 가는 것 같은 이 차안에서의 체감 속도. 나의 오늘은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은데, 그 오늘이 반 백년 쌓인 내 인생 전체를 가만히 돌아보니 까마득히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친 몸을 쉬게 해줄 집으로 돌아왔으나 따뜻하게 데펴줄 땔감이 없어 다시 밖으로 나가 땔감을 구해본다.

화목보일러 안에 숨구멍 열어두는 방법으로 차곡 차곡 어긋나게 나무를 쌓고, 불쏘시개 될만한 종이를 길게 둘둘 말아 끝자락에 라이타로 불을 붙인다. 숨구멍 사이로 불쏘시개를 집어넣어 땔감에 불이 붙게 해준다. 서서히 불이 붙으면 화기가 온기가 되어 얼굴부터 후끈하다. 점점 번져나가는 불꽃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다 잘 붙었다 싶을 때 뚜껑을 닫는다. 이제 보일러 물이 데펴지면 방바닥 구들장이 뜨끈해지겠지? 몸을 털고 옷을 갈아 입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지친 몸을 아랫목에 지져본다. 따땃하니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이 순간, 내일은 어디로 가서 땔감을 구할까 골똘히 궁리하는 척하다 잠에 든다.

​이건 그냥 내 상상이고, 집에 도착해서 가스보일러 버튼을 난방으로 돌리는 버튼 띡 누르고, 뜨근한 물에 몸을 씻기도 전에 이 글을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땔감을 어디서 구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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