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소도시 공공극장에서도 음악극, 무용, 연극, 오케스트라가 한 지붕 아래 운영된다. 중형 공공극장에서 시즌 동안 500회 이상의 공연을 하고, 각종 행사를 합치면 700~1000회까지 한다는데, 정말 가능할까? 그렇다면 인근 소도시에는 극장이 없을까? 시립 합창단이나 시/주립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운영될까?
이를 전주를 예로 들어 상상해 보자. 인구 약 60만 명의 전주 공공극장에서 음악극, 발레, 연극, 오케스트라 파트를 운영한다고 가정해보자. 공연장은 대공연장 1000석 이상, 소공연장 약 300석, 소극장 약 100석이다. 예산은 약 500억 원이며, 고용된 예술가(솔리스트 성악가, 합창단, 무용단, 오케스트라, 연극배우)는 약 200명, 무대, 조명, 기술, 제작, 미술, 분장, 의상, 홍보, 운영, 관리 인력은 약 300명이다.
이 극장은 음악극 파트에서 매 시즌 새로운 오페라 상연작 6편, 재상연작 4편을 무대에 올리며, 여기에 뮤지컬 2편도 포함된다. 발레는 상연작 3편, 재상연작 1-2편, 그 외 음악극과 협업 작품을 공연한다. 각 작품은 적게는 8회, 많게는 20회까지(1-2개월 동안) 무대에 오른다. 연극은 소공연장을 주 무대로 하여 상연작 7편, 재상연작 7편을 공연하며, 각 작품을 1-2개월에 걸쳐 6-20회 공연한다. 청소년(어린이) 극단은 소극장에서 각각 4편, 3편의 작품을 올린다. 또한, 마티네, 실내악,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오케스트라는 모든 오페라와 발레의 반주를 담당한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연 8회의 정기 연주회, 신년 음악회, 시즌 마감 오픈에어 콘서트, 앙상블 기획 음악회 등을 연주한다.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연주하냐 싶겠지만, 오케스트라는 단체협약에 따라 보통 1회 연습시간을 2시간 반~3시간으로, 주 8회, 총 20~25시간을 근무한다. 만약 한 주에 10회 연습하여 30시간을 근무했다면, 4-6주에 걸쳐 주 8회 평균 근무 시간을 맞춰야 한다. 각 개인이 이미 충분히 연습된 상태에서 합주 연습과 공연을 위해 출근한다고 보면 된다.
합창단의 경우, 평소 음악 연습은 휴식을 포함해 2시간 이상 할 수 없다. 무대 연습 시에는 최대 3시간까지 가능하며, 최종 리허설에서는 4시간까지 허용된다. 저녁 11시간 휴식 시간은 모든 파트에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만약 리허설 후 밤 11시에 퇴근했다면,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는 휴식 시간이다. 하루에 두 번의 연습시간이 잡혔을 경우, 각 연습시간 사이 4시간 휴식 시간이 필요하며, 공연 전에는 5시간 휴식이 지켜져야 한다. 주중 하루, 하루 반, 공휴일은 반드시 쉬는 날이다. 부득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공연해야 한다면, 오전에는 연습이 절대 없다. 모든 단체협약에는 주 44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도록 명시되어 있다.
솔리스트는 집중적으로 노래와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과 연습 사이 ‘충분한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황과 별도 계약 조항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모든 고용된 예술가들은 밀도 있게 짜인 공연 일정에 맞춰 보통 첫 공연 6주 전(규모에 따라 8주 전)부터 연습이 시작된다. 오페라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고 가정했을 때, 1-3주는 각 파트의 개별 연습이 이루어진다. 합창은 합창실,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 연습실, 솔리스트는 연습실에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연습하며, 이때 음악적인 모든 부분이 준비되어야 한다.
4주째에는 무대, 조명 설치가 시작되며, 각 파트가 만나 리허설을 진행한다. 저녁에는 보통 다른 공연이 상연되므로 대부분 오전에 피아노 반주에 맞춘 무대연습이 이루어진다(보통 큰 연습실에서). 5주째는 무대 설치 점검 및 실전 무대 연습을 하며,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만 따로 하거나 솔리스트와 합창이 피아노 반주로 무대 연습을 하기도 한다. 오케스트라, 솔리스트, 합창의 합동 리허설은 약 5회, 6주째 화요일까지 진행된다. 6주째 토요일이 첫 공연일 경우, 수요일에는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전체 리허설, 목요일에는 최종 리허설, 공연 전날인 금요일에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토요일에 프리미어 공연이 열린다.
이 공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2-3주 단위로 새로운 작품이 계속해서 무대에 오른다. 위에서 설명한 공연은 보통 2개월에 걸쳐 15회 이상 무대에 오르게 된다. 여러 공연 스케줄이 맞물리며 각 파트가 단체협약의 근무 조건을 준수하여 시즌 내내 모든 연습실과 공연장이 풀가동되니, 500~600회 공연은 가능하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는 7월 중순이나 말부터 6주간 극장은 긴 휴식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7월 말~9월에는 공연이 없을까? 극장에서는 없다. 이 기간에는 극장의 보수 및 점검 기간이 된다. 하지만 각종 축제가 도시 곳곳에서 펼쳐진다.
전주 공공극장이 이렇게 운영된다면, 인근 소도시는 어떻게 운영될까? 군산의 인구 약 30만 명, 1000석과 3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진 공공극장은 예산 250억 원으로 뮤지컬과 오페레타 중심의 음악극, 발레 대신 현대무용, 실험극 중심의 연극, 오케스트라 섹션을 운영할 수 있다. 정읍은 국악과 한국무용 중심의 공공극장을, 익산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음악극과 청소년 연극에 특화된 극장을 운영할 수 있다. 물론, 별도로 도립, 시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도 존재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우리에게 딜레마를 제시한다. 문화예술은 단순히 공연예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수백억 원이라는 상당한 예산을 투자하여 공공극장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깊이 고민하고 시도해볼 만한 의지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한국의 공연예술계도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면, 그동안의 관습적인 운영 방식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공공극장은 그저 공연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장이자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추적인 공간으로써,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모든 이에게 공유되고 지지를 받는다면, 공공극장은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예술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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