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충돌에서 협업으로
한국과 독일의 공공극장은 운영 구조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대관 기반 극장이 일반적이라면, 독일은 제작극장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인과 기획자, 행정 인력 등 서로 다른 전문성을 지닌 이들이 협업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다.
장석류 교수는 『좋은 문화행정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인, 기획인, 행정인을 각각 하나의 부족으로 비유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행정인은 숲 전체를 조망하며 제도와 구조를 설계하고, 예술인은 숲 속 깊이 들어가 생명체를 감각하고 키워내며, 때로는 자신이 꽃이 되고 나무가 된다. 기획인은 이 둘 사이를 오가며 소통하고 조율하는 교량적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행정인은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는 갖추었지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세심하게 바라보는 감각은 부족할 수 있고, 예술인은 그 생명에 몰두한 나머지 숲 전체의 구조를 놓치기도 한다. 그래서 기획인은 이 두 부족 사이의 능선을 오가며, 때로는 함께 숲을 바라보는 망원경을 들이밀고, 때로는 발아래를 짚으며 골짜기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작극장의 현실에선 여기에 무대기술, 제작, 의상, 분장, 미술 등 백스테이지 스태프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이들도 작품 실현을 위해 빠질 수 없는 동등한 주체이며, 때때로 갈등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울름 시립극장 역시 이 네 부족이 각자의 언어와 관점, 책임을 가지고 함께 작업하는 독일의 전형적인 시립 제작극장이다. 독일은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 대부분에 시립극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13만 도시 울름의 극장 역시 약 300명 이상이 상시 고용되어 공연을 제작하고 운영한다. 대략적으로 예술인(오페라 앙상블, 연극, 무용, 오케스트라, 합창단) 약 120명, 백스테이지 인력 약 100명, 기획 및 예술경영인력 약 50명, 그리고 시청 소속의 극장 행정 인력 약 50명 정도가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숫자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공연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실로 다양한 전문 영역이 긴밀히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안경을 쓰고 같은 목적을 바라보는 이 네 부족 사이에는 때때로 충돌이 생긴다. 최근 들어 그 충돌이 일상적으로 체감될 정도다. 예를 들어, 울름 극장에는 지금까지 만 3세 이하 유아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고, 어느 기획자가 이를 제안하고 추진하고자 했다고 해보자.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공연 기획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극장에서 왜, 굳이 영유아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이 그 출발점이 된다. 공연비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외부 예술가와의 협상, 수용 가능한 관객 수가 100명 이하로 한정되는 상황에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 그럼에도 적자를 피해야 한다는 재정적 요구, 고객관리팀과 티켓 전략에 대한 논의, 공연 횟수와 일정 조정, 재무팀의 승인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설득되지 않으면 이 공연은 실현되지 못한다.
또 다른 사례로, 오케스트라의 금관악기나 타악기 앞에 앉는 연주자들은 데시벨 문제로 인해 청력을 보호하기 위한 투명 보호막이 필요하다. 다음 달에는 울름 빌헬름성에서 21회의 뮤지컬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동시에 극장에서는 오페라 작품이 상연된다. 이로 인해 보호막이 두 세트 필요하다는 설명을 했으나 재정팀은 승인하지 않았다. 이유는 “공연이 동시에 같은 날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매번 보호막을 운반해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스테이지 인력은 계약상 보호막을 운반하는 것은 자신의 업무 범위가 아니며, 악기와 의자, 보면대 설치만이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자발적으로 운반할 수는 있으나 강요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정팀은 통상적으로 악기계의 업무에는 운반도 포함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설치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계약 해석과 노동 강요에 대한 시각 차이로 이어졌다.
또한 이 뮤지컬 제작으로 인해 오케스트라 내 일부 악기군을 제외한 연주자들은 수 주간 공연이 없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일정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에 새로운 공연을 기획해 연주자들의 활동을 보완할 수도 있지만, 기획 인력을 충원하자는 제안은 행정부서에서 임금 예산 문제로 반려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기획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 확충이 예산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회는 사라졌다.
울름 극장의 현 극장장은 다음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30년 가까이 예술감독으로 극장계에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예술의 방향을 설정하거나 예술가들과 소통하는 일이 아니었다. 가장 고된 일은 언제나 행정부서와의 설득, 마찰, 제안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독일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노동자 보호 중심의 계약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부족 간 입장 차이는 협상보다는 구조적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행정은 행정의 언어로 말하고, 예술은 예술의 논리로 주장하며, 기획은 그 틈에서 번역과 조율을 반복한다.
극장, 더 넓게는 문화기관과 문화행정의 운영은 결국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 조율의 방식에 달려 있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서로 다른 부족 간 지평의 융합이 필요하다. 네 부족이 각자의 언어만을 고집한 채 자기 시야에 갇혀 있을 때, 극장은 멈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제작극장 구현에 있어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일까. 한국의 대부분 공공극장은 대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자체 제작을 위한 상시 예술 인력이나 기술 인력, 기획 인력을 보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술인들은 외부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투입되고, 기획자는 ‘지원사업 제안자’로만 기능하며, 극장은 공간과 장비를 제공하는 시설 운영기관으로 역할이 한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네 부족이 동일한 시공간에서 긴 호흡으로 협업하며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극장’ 모델을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작극장을 시도해 볼 수 있다면, 이 네 부족이 각자의 안경을 벗고 서로의 안경을 써보는 상상은 너무 이상적일까? 같은 숲을 바라보면서도 ‘이렇게도 다르게 보이는구나’, 하고 서로의 시선을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면 한국에서도 ‘제작극장’이라는 개념이 실체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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