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레퍼토리 제작극장의 무대 안전과 시스템의 구조

by Arete

독일의 제작극장은 한 작품을 몇 주 동안 연속으로 올리는 연속 공연 시스템(En-Suite)이나 작품을 순차적으로 올리는 스타지오네(Stagione) 방식보다, 보통 여러 작품이 번갈아 상연되는 레퍼토리 상연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는 독일 제작극장이 영미권이나 다른 유럽권의 제작극장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보통 이러한 공공극장은 최소 네 가지 장르, 즉 음악극·연극·무용극·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그에 해당하는 예술가들을 극장이 직접 고용하고 있다. 그래서 수요일에는 오페라가 공연되고, 다음 날에는 연극이 올라가며, 금요일에는 발레, 토요일에는 오케스트라 정기연주, 일요일에는 뮤지컬이 열리기도 한다.

이 구조는 관객에게 다양한 작품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극장 내부에서는 또 하나의 물리적 특징을 만들어낸다. 바로 무대의 설치와 해체가 거의 매일 반복된다는 점이다. 어제 공연된 작품의 무대는 밤사이 철거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전혀 다른 작품의 무대가 다시 설치된다. 조명, 음향, 장치, 소품, 무대 구조까지 완전히 바뀌는 이 작업은 시즌 내내 반복된다.


그래서 독일 제작극장에서는 기술 스태프의 규모가 매우 크다. 무대기술, 조명, 음향, 소품, 무대장치 제작 등 다양한 기술 인력을 극장이 직접 고용하며, 그 숫자는 종종 네 장르 예술가의 규모에 맞먹는다. 이들은 외부에서 단기적으로 투입되는 인력이 아니라 극장에 상시 고용된 기술 스태프로서,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축적된 경험과 숙련을 바탕으로 사고 가능성을 미리 감지하고 차단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더욱이 레퍼토리 시스템에서 반복되는 무대 설치와 해체는 위험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술적 노하우가 축적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품 준비 과정 역시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보통 프리미어 약 6개월 전에 무대구상리허설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 연출가와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극장의 모든 부서 핵심 담당자들 앞에서 작품의 무대 구상을 프레젠테이션하며 공식적인 준비 기간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처음 아이디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이전 단계에서 연출가, 극장장, 무대 디자이너, 무대기술 마이스터 등이 여러 차례 논의를 거친다. 예술적으로는 연출가가 최종 결정권을 갖지만,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연출을 위한 무대 디자인이라도 무대기술 마이스터가 안전성 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무대구상리허설이 열릴 때쯤이면 사실상 가능성과 안전성에 대한 1차 판단은 이미 끝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솔리스트와 합창단은 악보를 전달받아 개인 연습에 들어간다. 지금 연습을 시작하는 작품은 보통 6개월 뒤 프리미어를 준비하는 것이고, 2개월 전에 시작된 작품은 곧 프리미어를 앞두고 있으며, 4개월 전에 시작된 작품은 공연 중반을 지나고 있고, 6개월 전에 시작된 작품은 이미 상연 막바지에 와 있다. 그래서 극장의 예술가들에게는 언제나 3~4개의 작품을 동시에 연습하고 공연하는 것이 일상이다.


리허설 과정도 매우 세밀하다. 약 6~10회의 장면 리허설(Szenische Probe)을 통해 동선과 연기를 다듬고, 이후 실제 무대 장치와 음악을 맞추는 오케스트라 합동 리허설(BO)이 5~8회 정도(작품 난이도에 따라 다름) 진행된다.


이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기술 리허설(Technische Einrichtung)이 먼저 진행된다. 기술팀이 기계 장치의 작동 여부, 하중, 전기 안전 등을 반복적으로 점검하며, 위험 평가에서 제시된 대책이 완전히 구현될 때까지 테스트를 반복한다. 또한 새로운 장치나 수조 장면처럼 위험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배우나 성악가, 무용수가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공식적인 안전 교육(Sicherheitseinweisung)이 이루어진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물을 사용하거나 불을 다루는 장면처럼 위험 요소가 있는 경우, 배우는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충분히 연습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독일 노동법과 산재보험 규정에 따라 숙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한 연기를 강요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후 실제 공연과 동일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드레스 리허설 Hauptprobe(HP) 두 차례와 최종 총연습 Generalprobe(GP) 한 차례를 거쳐 프리미어에 이르게 된다. 또한 독일 극장의 모든 일정은 공식 일정표에 공개된다. 전날 오후 2시까지 다음 날의 일정, 즉 극장의 어느 공간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명시되는 것은 독일 공공극장의 의무 조항이다.


독일 극장의 안전 구조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예술 권한과 기술 권한의 분리이다. 극장장(Intendant)은 예술적 책임을 지고, 기술감독(Technische Direktion)은 무대 안전을 책임진다. 이 두 권한은 위계 관계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구조로 작동한다. 만약 무대 마이스터가 배치되지 않았거나 소방 점검을 통과하지 못하면 공연은 허가되지 않는다. 또한 공연 중에도 위험이 감지되면 무대 마이스터는 즉시 공연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 모든 작품은 연습 시작 전에 위험 평가(Gefährdungsbeurteilung)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는 위험 요소를 식별하고 보호 조치를 마련하며 책임자를 지정하고 잔여 위험을 확인하는 반복적이고도 체계적인 과정이다.


이처럼 무대 위에서 관객이 보는 두 시간의 공연 뒤에는 수개월 전부터 준비된 여러 과정과 반복되는 작업, 수많은 안전 점검, 그리고 그 속에서 축적된 기술적 경험이 존재한다. 이는 독일의 레퍼토리 제작극장이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극장에 직접 고용되어 창작하고, 그에 상응하는 규모의 기술 인력이 함께 고용되어 매일 반복되는 연습과 공연, 그리고 무대의 설치와 해체를 수행하는 구조 속에서 가능해진다. 마치 잘 기름칠된 시계 안에서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덧. 예지사(예술인안전을지키는사람들)의 활동에 조금이나마 보내고 싶은 글.

매거진의 이전글계원예고 성악과 학생들의 독일 울름극장 방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