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미워해도 되나요?

by 진다락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문장이 있다.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드나들
틈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은 늘 내 마음에 머물며

모든 관계 앞에서 나를 조용히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늘 가족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마음의 문을 열면 금세 생채기가 생기고,

마음의 문을 닫으면 그 냉담함에

내 자신이 먼저 무너졌다.


가족이어서,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라서

마음을 분리하기가 더 어려웠다.



가족을 미워해도 될까?



모든 것이 결국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지만,

더 이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 싶다는

모순에 휩싸인다.


벗어나고 싶다.

더 이상 얽매이고 싶지 않다.


어릴 적 목구멍 안에 맺혀 시큰거리던 말들이

목적을 달리 한 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TV 속 수많은 사연을 보며 슬픔에 잠긴다.

나도 한때는 나의 가장 큰 불행이

가족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왜 벗어나지 못해?"

"너의 인생을 살아"



나에게 향했던 위로는

오히려 내 마음에 가시가 되어 꽂히곤 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은 나의 세상인데,

그 모든 세상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비로소 '갇히다'는 말의 의미를

나에게 입혀본다.


내 몸과 마음, 생각의 흐름까지도

가족이라는 틀에 갇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갇혀있는지도 모른 채

갇혀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수많은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나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만 아파하라는,

생각을 달리해보라는

지독한 간섭에도

의연해지려 노력한다.


그땐 너무 아팠잖아.

그럴 수 있어.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어린 시절, 어두운 방 안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공책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번지는 것을 보며 매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크면 괜찮겠지.

어른이 되면 다 변하겠지.


물론 상황은 많이 변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우리 가족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 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마음에 남은 상처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 거리 두기는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연습해 본다.

마음으로 선을 긋고

나만의 공간을 지키는 것.


작은 용기 하나에도 몇 날 며칠 고민하고

결국은 포기하고 마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금 나는 그냥 나야.

가족은 가족이고

나는 나일뿐이야.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나 자신을 지켜도 돼.

충분히 할 수 있어.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가족'이다.


가족이란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크고 중요한 존재인지

가족에게 사랑을 받은 사람도

가족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도

마음 깊이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연연하게 된다.


나의 온전한 사랑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주고,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따뜻함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현명한 기준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어야 한다.

내가 받고 싶었던 보살핌과 애정,

조언과 관심, 격려와 지지.


오늘도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

'고생했어'

이야기해 준다.


내가 나를 생각할 때

더 이상 연민의 마음이 들지 않도록.

사랑 가득 받아 충만함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토닥토닥

오늘도 고생했어.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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