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여백)

by 마당넓은 집

눈을 뜬다. 검은 시계 視界가 열리고 색이 시작된다. 색이 빛이 되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일상은 정해진 순서처럼 움직인다. 바로 얼굴을 씻고 출근을 준비한다. 차에 오를 때까지 생각이 들어설 틈이 없다. 자동차가 차도에 오른다.

틈을 비집고 생각이 들어오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해야 할 일, 준비해야 할 일을 떠올린다. 오랜 직장생활은 루틴이란 것도 있지만 매일은 조금씩 다르다. 아침에 하는 세수하듯이 정해진 일을 하고 새로운 일들은 여러 궁리를 보태서 한다. 새 블록 장난감을 조립할 때처럼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오늘의 블록을 쌓는다. 그것은 쉬운 일보다는 까다로운 때가 많지만 결과는 설렘이 먼저였다.

언제부턴가 설렘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놈이 다시 기어 나올까 봐 자물쇠로 여러 번 잠갔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그놈을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직장생활은 설렘과 함께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고, 다음은 새로운 과제 앞에서였다. 주어진 과제 앞에서 스스럼없이 묻고 말했다. 남보다 빠른 눈썰미에 사람들의 칭찬이 좋았다. 이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그것은 더러 잠을 설치게 하였고, 가슴 누른 압박감도 주었지만 가쁜 숨을 쉬며 해냈다. 일은 할수록 더 잘 보이고 재미도 생겼다. 일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앞으로 등을 떠밀었다. 그러면 또 헉헉거리면서도 기어코 해냈다. 생각은 늘 회사 언저리에 머물렀다. ‘넌 할 수 있어.’ 마술 같은 주문을 욌다. 모든 일이 그랬다. 어떤 힘든 과정에는 서운함도 불평도 없었다. 오직 목표라는 외길을 바라볼 뿐이었다. 피로는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잊어졌다.

큰 일을 부여받았다. 무거운 일이었다. 다들 그 무게에 압도되어 기피한 일이었다. 성과의 결과도 약속받았다. 요구한 것도 아니고, 노역의 가치에 대응하는 값을 지불 하겠다는 상사의 자발적인 제안이었다. 일은 경중을 떠나 하는 동안에는 평화로웠다. 격려와 위로만 있을 뿐이었다.


일이 끝났다. 잠시의 축하가 따르고 성과를 배분하는 일이 남았다. 내 몫은 따로 준비되었다. 약속을 받고 감당했던 일이었으니 기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일만 하지 말고 이제는 판을 읽으세요” 후배의 말에 “직장에서 일만 잘하면 되지 무슨 정치하냐” 은근히 때를 기다렸다. 잡음이 생겼다. 일 앞에서는 뒷걸음질 쳐도 성과의 분배 앞에서 양보도 질서도 없었다. 눈앞에서 작은 성과도 부풀어지고 숨어있던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침묵하고 기다리는 자는 뒤로 밀어 넘어뜨렸다. 약속은 이미 과거의 기억이 되었다. 밀실에서 분배의 낯선 얼굴이 만들어졌다. 결정은 종이에 선고처럼 봉인되었다. 한 번 스며든 잉크는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조직이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쓰임을 다한 마 馬. 요구받은 것은 침묵이었다. 침묵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밀려 나가야 했다.

비겁한 회유가 진실을 가렸다. 나는 순수와 성실의 경계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삶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부끄러움 보다 더한 무거운 삶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땅만 보며 다녔다. 사람들의 눈짓이 나를 향해 얕은 웃음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쌓은 블록은 이미 빼앗겼다.

부끄러움은 언덕은 되고 끝내 산이 되어 높아져만 갔다. 그렇게 얼마를 견디고 있었다. 어느 날 고개를 들고 보니 가까이 또 다른 산이 곁에 있었다. 언제부터 저 산이 있었지. 소리없이 블록을 쌓던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그 또한 쓰임을 다한 馬 였다. 어깨가 풀썩 내려앉았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일들이 다반사인 세상에서 어쩌면 나는 스스로 성실함이라 이름 붙인 욕망에 속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욕망을 위해 눈을 감고 달려간 건 아닐까. 깃털 없는 날개로 날지 못하면서 이미 날고 있는 줄 알았다. 내 안에 껍질처럼 붙어 자라고 있는 허영을 털어내야만 했다.

옷을 벗었다. 허물을 벗어 그 안에 숨어있는 작은 허영마저 털어냈다. 구태여 위로가 필요치 않았다. 그저 함께 옷을 벗어주는 벗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외피를 걷어낸 인간은 누구나 다를 것이 없다. 계급도, 성과도 사라진 수평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마주 본다. 시선이 맞닿는 그때, 조용히 산이 흘러내린다.


검은 시계를 열고 시작한 일상은 어제와 다르다. 유혹 앞에 욕망을 입었다. 옷을 벗으니 이제야 풍경이 보인다. 처음 느꼈던 설렘이 다시 눈앞에 서 있다. 일이 보인다. 아니 예전보다 더 잘 보인다. 다만 이제는 덥석 달려들지 않는다. 먼저 방향을 바꿔 둘러본다. 그것이 나를 향해 눈짓하며 가까이 가서 손을 잡는다. 세월이 준 선물 중 가장 값진 것은 멀리까지 보이는 혜안이다.

작은 날개깃으로 날개 짓하며 필사적으로 날아오르려는 작은 새들도 바라본다. 덥석 달려 안아 들고 등에 올리지 않는다. 그냥 잔잔한 눈으로 지켜만 본다. 그 또한 귀한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은 날개 짓이 예전의 나처럼 불합리한 분배 앞에 무너지지 않도록, 내가 선 자리에서 조금씩 공정이라는 주춧돌을 끼워 넣는다. 화려한 외벽을 쌓는 일보다 보이지 않는 바닥을 다지는 일이 더 소중함을 이제는 안다. 등에는 짊어질 수 있는 만큼만 진다.


운동화를 신는다. 나를 닮아 예쁘지도 말끔하지도 않지만 편안하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애써 구하려 않는다. 스며드는 조용한 배려를 배워간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그렇게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 간다. 어린 새들에게 말한다. 서는 것도, 나는 것도 어느 하나 결코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많이 넘어진 만큼 더 높이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귀띔만 한다.


차도를 달린다.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달린다. 핸들 위에 얹은 손이 묵직하다. 그 무게가 낯설지 않다. 책임도, 거리도, 지금 나에게 이 정도가 적당하다. 더 움켜쥐지도 놓아 버리지도 않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 생각이 더 이상 앞질러 가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일만 오늘의 자리로 놓는다. 오늘의 여백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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