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6(토)

by 기노

오늘 ‘기사님’이라는 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나는 이동할 때 지하철을 타기도 하지만, 장애인 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 연락처에 ‘기사님’이라고 저장된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유도를 배우던 시절, 유도장에서 집까지 나를 태워다주셨던 분이다. 당연히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부탁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건 우연의 일치다. 장애인 택시 앱으로 콜을 부르면 유독 그 기사님이 뜨는 것이다.

운동이 끝나고 나면 나는 온몸이 땀에 젖어서 파김치가 됐다. 그때 기사님과 함께 서울의 뻥 뚫린 밤거리를 달렸다. 나는 원래 말이 없는 편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택시 안에서는, 파김치의 입장으로 최대한 조용히 있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사님하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다. 처음엔 역시 불편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하루는 기사님이 창문을 열어 보라고 하시며 말했다.
 “ㅇㅇ아~ 이게 아카시아 냄새야. 맡아본 적 있니? 어때, 참 좋지? 여기가 유독 아카시아 냄새가 많이 난다니까. 힘내자, ㅇㅇ아.”
 나는 아직도 그 냄새를 잊을 수 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대회 중에 오른쪽 십자인대와 내측 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았다. 본가로 내려가 재활을 하고, 다시 유도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기량은 돌아오지 않았고, 마음은 자꾸만 먼 데로 갔다. 나는 강인한 척을 하려고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회복이 거의 되었다고 생각했을 무렵, 대련 중 상대의 작은 기술에도 겁이 났다. 밭다리가 걸릴 때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집중해 보려고 유도장 근처로 이사까지 했지만, 쉽지 않았다. 3개월 전의 일이다.

운동이 끝난 뒤, 젖은 도복 바지를 갈아입지도 않고 밤거리를 걸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게토레이 하나를 사는 것이 루틴이었다. 절뚝거리는 다리와 함께 게토레이를 쪽쪽 빨며 집까지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도복 바지를 벗고, 잘 벗겨지지 않는 무릎 보호대를 벗으려 낑낑대다가, 이것이 잘 벗겨지지 않아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매일이 똑같았고, 나는 점점 걸음이 느려졌다. 결국 나는 도망쳤다. 친한 교회 형의 결혼식이 있어서 본가에 내려가던 주말, 나는 완전히 도망친 것이다.


오늘 그 기사님에게 정말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예전에 “대회 1등 하고 와”라는 안부 인사가 마지막이었다. 기사님은 뉴스에서 내 이름과 똑같은 정치인의 이름을 보고 문득 떠올랐다며 연락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렸고, 지금은 그래서 백수라고 말했다. 기사님은 호탕하게 웃으시고는 한참 침묵하시다가 말했다.
“고생 많았다. 너 태워다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했던 게 참 좋았는데 그치?”
그리고 나중에 밥 한 끼 하자며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 오른쪽 무릎에는 코끼리가 산다. 나사 두 개, 길게 난 칼자국 하나. 이것은 분명한 코끼리. 나는 오늘 오랜만에 코끼리에게 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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