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학생들, 수업 중단 소식에 애달파하는 모습 보며
인원수 부족으로 마을 학교 문을 닫게 되었다고 어르신 학생들에게 말하고 와서 심란하지만 남은 수업이라도 성실하게 하고 싶다. 교과서 두 권만 끝내면 초등부 과정을 끝내는데 그걸 못하고 중단하게 되니 마음이 착잡하다. 어떻게 해야 남은 삼일의 수업을 뜻깊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숙제 검사를 시작했다.
기 OO 학생의 숙제 검사를 하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까지 기 OO 학생은 그림에 맞는 글을 재미있게 썼다. 이번에도 그림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내용이 그림과 상관없었다. 다음은 기 OO 학생(89)의 글이다.
"6월 19일 월요일 마을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 공부하면서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유월 말까지만 공부하면 못 하게 될 것 같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한동안 정신이 멍하더군요. 불과 일 년 안쪽이면 잘 끝날 건데 청천병력 같군요. 선생님께 죄송하고요.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유야 어떻턴간 졸업을 못 한다는 것은 창피한 생각도 드는군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맞춤법은 두 개 틀렸지만 뜻 전달은 충분하니 이만하면 훌륭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니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던 공부를 중간에 중단해야 하는 심정을 이렇게 글로 표현을 잘해서 기쁘기도 하고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한 보람이 있구나.' 나도 중도에 수업을 그만두게 되어 아쉬운 마음 표현할 길 없어 우울했는데 이런 글을 접하게 되어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80대를 훌쩍 넘긴 연세에 자모음부터 배워서 글로 이만큼 자신의 생각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나를 행복하게 했다.
힘없고 고독한 어르신들이 외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다. 수업은 세 번이면 끝이다.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이 분의 숙제를 소장하고 싶어졌다. 다음 수업 가면 내게 주십사 부탁드려야겠다. 어쩌면 기 OO 학생과의 수업은 내생에 다시없을 것 같아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이 글을 촬영해 담당자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어서 담당자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숙제 검사를 끝내고 요즘 공부에 흥미가 붙은 최 OO 학생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핸드폰 검색을 시작했다. 마을 학교가 그만두게 된 것을 가장 애달파하는 학생이다. 가까운 곳으로 최 OO 학생이 다닐 만한 성인 문해 학교를 찾아보니 마땅한 곳이 없다. 시내에 한 군데 있지만 오전 수업을 5일 동안 하는 곳이다. 이 학생이 월, 수, 금 오전에 노인 일자리를 하러 다니니 갈 수가 없다. 더군다나 농사도 짓는다.
그동안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석했으면 89세 기 OO 학생만큼 한글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최 OO 학생은 오일장에 장사하러 다니느라 날짜가 겹쳐 결석을 많이 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 학생이 공부할 만한 곳을 찾다 보니 다른 지역에 한 군데 있었다. 그런데 시내버스로 45개 정류장을 이동해서 도보로 12분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다닐 거냐고 전화로 여쭈니 그래도 공부하겠다고 했다.
그쪽 선생님께 학생 한 명을 보내도 되겠느냐고 문의했다. 허락한다 해도 최 학생이 일주일에 이틀을 그 먼 곳까지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말은 갈 수 있다고 해도 86세 고령인 데다 오전에 노인 일자리 끝내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과 수요일이 수업 날인데 노인 일자리도 월, 수요일이다. 최 학생은 멀어도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쪽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수업장소가 멀으니까 시간이 맞으면 버스정류장에서 선생님이 픽업하겠다는 약속도 해주었다. 잘 됐다. 성인문해교원은 이렇듯 봉사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할 수 있다. 나는 허공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때 카카오톡이 울렸다. 시청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답장이다.
"네, 선생님! 저도 어르신 글을 보니 너무 어르신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네요. 개인적으로도 어르신들이 계속해서 공부했으면 좋겠으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네요, 몇 분 추가로 모시는 거는 힘든 거겠죠?"
아파서 결석하는데 어쩌지 못하는 것을. 그리고 이제 새로운 어르신들이 온다고 한들 진도를 따라올 수 없는데 답답하다. 이분들은 6학년 단계를 배우는데 어떻게 자모음도 모르는 분 들하고 함께 수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카카오톡에 답글을 썼다. 지혜의 나무 11권 4단원 수업 때 학습활동 하기 문제 풀기로 한 '밀양 아리랑'을 불러본 후 노랫말 짓기 문제가 있는데 학생들이 지은 노랫말을 담당자에게 보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 노랫말로 부른 영상도 함께 보냈다. 최 학생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로 했다는 글도 보냈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선생님한테 공부하긴 다 틀렸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잘 배웠소 잘 배웠소 잘 배웠소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잘 배웠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담당 주무관한테서 답장이 왔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 방법을 찾아볼게요."
방법이 생길까? 난 마지막 남은 3일간의 수업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의 공부를 총정리해야겠다. 출판기념회 영상과 소풍 갔을 때 영상도 준비해서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께 손 편지를 쓰기로 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