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지막 날까지 사과나무를 심자고요"
요즈음 마을 학교 수업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간다. 아픈 학생들이 많아서 결석자가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다. 마을 학교에 도착하면 신발 수부터 재빠르게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신발 수가 적은 것을 보니 '아직 아프시구나' 내 마음마저 아파진다.
오전에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다음 달부터는 10명이 안 되면 마을 학교 문을 닫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10명을 만들면 계속할 수 있단다. 다음 달은 오늘부터 계산해도 2주 남았다. 2주라고 해야 일주일에 이틀 수업이니 오늘 수업 말고 3번밖에 남지 않았다.
5월엔 교과서 마칠 때까지 수업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달부터 방침이 바뀌어서 어쩔 수 없단다. 2주 앞두고 연락하면서 새 규칙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지만 어르신들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니며 치료하느라 결석인 것을. 그분들이 언제 몸이 회복되어 학교에 오실지 어떻게 알겠는가.
새로운 학생을 받을 수도 없다.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니까. 6학년 과정 배우는데 자모음부터 배워야 하는 학생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80대 중반의 어르신들을 일반 정규 학생들처럼 규정대로 한다는 것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힘없는 나는 따를 수밖에.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문제다.
학생들이 더 아쉬워하는 수업 종료
교과서 12권 중의 2권만 끝나면 초등부 과정이 끝난다. 현재 11권째 4단원을 배우고 있다. (참고 : 성인문해교과서는 총 12권으로 1, 2, 3단계로 돼있다. 1단계는 1~2학년 과정, 2단계는 3~4학년 과정, 3단계는 5~6학년 과정으로 각 단계별 4권씩으로 되어있다. 11권은 6학년 과정이다.) 끝을 맺고 싶은 학생들은 있는데 여기서 중단하자니 난감하다. 코로나 19만 아니었으면 초등부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담당 주무관의 말이 갑작스러워 나도 당황했다. 그만둬야 할 시기를 2주 남기고 수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하자니 난처하다. 담당 주무관의 말을 빨리 전해야 어르신 학생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런데 공부 시작할 때 중단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할까, 수업을 마치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음 수업 날에 전해야 할까 고민하며 마을 학교 교실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어쩌면 좋대유? 나 한글 다 알 때까지 배워야 하는디 학생이 자꾸만 줄어서 걱정되유."
늦게 입학한 최 학생은 글자를 띄엄띄엄 읽을 수 있게 돼 아주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 결석자가 많아 최 학생이 더 걱정하는 것이다. 마을 학교의 적정 인원수 미달로 그만두게 된다는 말을 지금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분들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까. 나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을 뗐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시청 담당자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학생 수가 10명이 안 되면 이번 달까지만 수업할 수 있다고 하네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어디 다른 곳에 공부할 수 있게 보내달라는 최○○ 학생. 2권만 공부하면 졸업인데 너무 아쉽다는 기○○ 학생. 이제 배우러 못 다녀서 안타깝다는 정○○ 학생.
내가 마음을 진정하고 끝나는 날까지 공부는 평소처럼 하자고 했더니 기○○ 학생이 '끝도 못 맺을 것을 뭐 하려 하느냐', '책 펼 생각이 안 나면서 정신이 멍하다'라고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공부 열심히 하자고요. 이 말은 스피노자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고도 하고 마틴 루터 일기장에 있던 말이라고도 해요. 이 말처럼 세 번 남은 수업이지만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 하던 공부는 계속해서 하자고요. 자, 26페이지 문제를 풀 차례지요. 문제를 풀기 위해 24페이지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 본문을 읽고 문제를 풀어볼게요."
이번 단원의 문제는 다행히 재미있게 만들어져 있다. 오늘처럼 무거운 날 안성맞춤이다. 1번 문제는 '밀양 아리랑'을 불러보기다. 내가 책상을 두드려 장단을 치고 학생들이 노래를 불렀다. 당신들이 잘 아는 노래를 소리 내 불러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아리랑'이 무슨 뜻인지 물으니,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아리'는 '고운'이란 뜻이고 '랑'은 '임'이라는 뜻이라고 했더니 그동안 뜻도 모르고 즐겨 불렀는데 어떤 뜻인지 알게 돼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배우면 좋은 것을 그만두게 되어 아쉽다고 했다. 오늘 이 말의 뜻을 알게 돼 여러분 지식이 손가락 한 개 길이만큼 늘어났다고 칭찬했다.
밀양 아리랑 가사 바꿔 부르기
3번 문제가 흥미진진하다. '밀양 아리랑'의 노랫말을 지어 보고 불러보기다. 노랫말 짓기 시간을 10분으로 정했다. 학생들이 10분도 되기 전에 연필을 책생에 내려놓았다. 내용이 놀랍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다 틀렸네
선생님한테 공부하기는 다 틀렸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잘 배웠소 잘 배웠소 잘 배웠소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잘 배웠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위 노랫말은 기○○ 학생의 노랫말이고 아래 노랫말은 정○○ 학생의 글이다. 이분들이 지은 노랫말을 칠판에 판서했다. 그리고 나는 책상 장단을 치고 학생들은 함께 '밀양 아리랑' 곡조에 맞춰 당신들이 지은 노랫말로 노래를 불렀다. 가수처럼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 밀양 아리랑 노랫말 짓기 성인 문해 교과서 11권에 4단원 3번 문제 밀양 아리랑 노래. 가사 지어부르기 문제. 학생들이 지은 노랫말.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를 그만하게 된다니 너무 아쉬워유."
두 권만 끝내면 되는 것을 마치지 못하는 내 마음도 아쉽고 무겁다. 어르신들과 정도 많이 들어서 한동안 가슴앓이로 일상이 힘들 것 같다.
-이글은 오마이 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