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C학생 대장암 수술하러 가시면서-
마을한글학교 학생들이 막 글자에 재미를 붙여 공부의 맛을 알게 되었을 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 19가 몰아닥쳤다. TV 뉴스에서 공기 전염이 된다 하고 엘리베이터만 함께 타도 코로나 19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갔다. 요가를 배우러 가서 강사에게 전염되었다 하고, 식당에서 앞에 앉은 확진 자에게 뒤쪽에 앉은 사람이 에어컨 바람 때문에 앞사람의 비말이 날아와 확진되었다는 보도가 나갔다. 자연히 집안에만 있게 되는 나날이 되었다. 그야말로 사람 만나기가 두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밖에만 나가려 해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몸 어느 구석에 달라붙어 코로나 19에 걸릴 것 같은 공포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방송에서는 시시때때로 늘어나는 확진자수와 사망자수를 알려주었다.
급기야는 확진이 되어도 수용할 병원이 부족된다는 보도에 일상이 멈췄다. 동네에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환자를 실어가고 소독을 하고 나면 온 동네엔 밖에 나와 활동하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다. 그야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볼 수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시골마을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을 나누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학교도 쉬고 회사에도 재택근무자가 늘어났다. 당연히 마을한글학교 수업도 중단되었다.
코로나 19가 비말로 옮긴 다고 하기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 주의할 점은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마스크에 묻어 있을 수 있어 하루 사용하면 버려야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한꺼번에 국민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고 그것도 한번 사용하면 버려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마스크를 구입하려면 줄을 서야 했다. 이렇게 불편을 겪다 보니 요일을 정해서 주민번호 끝자리에 맞춰 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등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발생했다.
시골에 사는 분들이 문제다. 시골 마을학교 학생들은 마스크 구입을 위해 읍내 나가려면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면 버스에서 코로나 19에 확진될까 봐 걱정되어 읍내 가기를 꺼렸다. 두려움 무릅쓰고 읍내 가서 사 온 마스크를 하루 한번 사용으로 버려야 한다니 고민인 것이다. 그래서 돈도 아끼고 읍내 나가는 번거로움도 줄이려고 마을학교 학생들이 마스크를 세탁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강조해서 말씀드렸다
“글 배우는 것보다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마스크는 하루 사용하고 꼭 버리셔야 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코로나 19가 종식되려나 기다려도 끝이 안보이자 마을한글학교 수업도 비대면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어르신 학생들이라 컴퓨터나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니 과제를 만들어서 가가호호 방문해서 학생의 집 대문에 매달기로 했다 그러면 혼자 과제한 것을 수거해 검사를 해서 가져다 드리는 방법이다. 과제를 낼 때 한글 쓰기와 그림도안에 색칠할 것을 함께 드렸다. 그렇게 몇 개월을 하다 보니 색칠 실력이 날로 발전하셨다. 다음에는 그림도안에 줄 서너 개를 만들어드리고 그림에 맞는 글을 만들어 써보라고 했더니 맞춤법은 틀리지만 곧 잘하셨다.
비대면 수업 시작 몇 개월 후, 이제 마을회관 정자에서 모여서 숙제하는 설명을 해드리고 그림책을 준비해 한 권씩 읽어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프린트해 준 그림을 보고 손주들이 너무 잘 그린다고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사줘서 그림을 그려 봤슈. 내가 그린 걸 보고 이웃집 000도 그림을 그렸는디 나보다 잘그려유.”
“오! 그러세요. 그럼 다음번 숙제 가져올 때 가져와 저 좀 보여주실래요?”
다음 주가 되었다. 두 분이 가져온 그림을 보고 너무나 깜짝 놀랐다. 처음 색칠공부를 할 때 그림이란 걸 접해보지 않아서 그림도안의 밖에까지 삐져나가게 칠하셨던 분들이다. 색깔의 이름도 이제서 하나하나 알게 된 분들이시다. 이분들에게 그림도안을 드리고 색칠 연습을 1년 정도 하다 보니 그림도안에 색칠이 날로 발전해서 색칠 솜씨가 좋아지긴 하셨다. 그런데 스케치 북에 손수 스케치를 해서 그린 그림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림이란 오로지 밑그림도안에 색칠연습만 했을 뿐인데 이건 작품이었다.
이 두 분의 연세가 한 분은 89세 C학생, 한 분은 88세 J학생이다. 물론 그림책의 그림을 보고 스케치를 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지만 훌륭했다. 이 그림을 그냥 놓아두면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자녀들이 소각해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아까운 마음이 들어 ‘책을 내 드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모두 남편분이 돌아가시고 혼자 살고 계신다. 89세 C학생이
“ 밤에 잠이 안 올 때 선생님이 가져다주신 그림에 색칠을 하고 글을 써 보니깨 너무 재미지고 잠도 잘 오더라구유.”
“그래서 애들 왔을 때 보여줬쥬. 그랬더니 손녀딸이 미술대 나왔는디 색연필이랑 스케치북이랑 사다줬슈. 할머니 그림 그려 보라구유. 아, 그림을 그려봤더니 너무너무 재미나지 뭐유.”
그림을 그리고 그림아래나 옆에 글도 쓰셨다. 물론 맞춤법은 많이 틀리게 쓰셨다. 모란꽃에 나비가 앉은 그림 아래에
“어려서 고부를 해 쓰면 이럭키는 안살을 겄 갔다.”
풀들과 나비 여치를 그리시고는
“나는 사라온 세상이 너무 허무하고.”
“내가 너무 무식해서 창피하고 속이 상한다.”
“내 나이 89세 이나마도 다향이다.”
지혜도, 애교도, 명랑한 분의 글귀가 순간 내 가슴에 얼음 한 조각 얹어 놓은 것 같이 아렸다. 수업에 여간해서 결석도 안 하고 만약에 결석을 하게 되면 하루 전에 전화를 하는 모범생이시다.
이제 마스크를 쓰지만 대면 수업을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수업을 못 할 때 백발이고 청력이 안 좋아 조교선생님이 필요했던 90세 L학생은 돌아가셨다. 코로나 19로 집에만 계셨던 89세 S조교선생님은 코로나 19 기간 동안 걷는 걸 안 해서 수업에 못 나오신다. 코로나 19 때문에 학생 수도 줄었다. 치매가 시작된 분, 병원치료, 남편 돌아가신 분 등 많은 일이 생겼다. 대면 수업을 하니 공부하는 것 같아 좋다고 하지만 아프신 분이 많아 마음이 무겁다.
지금 배우는 책 말고 두 권만 끝내면 초등부 과정이 다 끝나는데 끝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건강이 안 좋으신 분이 많아서다. 그래도 공부가 재미있어하며 오시는 분들 때문에 수업준비를 해서 기쁜 마음으로 수업을 갔다.
89세 C학생이 대장 검사를 하고 오신다 했는데 안 오셨다. 전화를 하니 검사가 늦어져서라고 하셨다. 그런데 대학병원 가서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예감이 불길하다. 89세에 대학병원 가야 한다니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대장암이라고 했다. 어르신들 수업을 하다가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이 문해수업을 하기가 무겁다. 아니하기 싫어진다. 2월 6일 수업을 가니 89세 C학생이 말했다.
“ 2월 14일 입원해서 2월 16일 수술하고 한 달만 빠질게유. 수술하고 한 달 있다 꼭 공부하러 올께유.”
“네, 기다릴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지금은 의술이 좋아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수술 잘 되실 거예요.”
속으로는 연세가 높아 걱정이 되지만 환한 얼굴로 말씀드렸다. 89세 연세에 잘 이겨낼 수 있으실까? 제발 잘 이겨내시길 바랐다. 수술 다음날 따님에게 전화하니 수술은 잘되었다고 했다. 직접 전화도 받고 목소리도 밝으셨다.
수술 후 보름이 지났다.
“ 선생님! 3월 4일 날 집에 가유. 3월 6일 날 공부하러 갈 수 있슈. 그날 봐유.”
“네. 뵙고 싶어요. 기다릴게요. 너무 반갑습니다.”
3월 6일 수업을 가니 정말로 89세 C학생이 오셨다. 나는 얼마나 반가운지 두 손을 덥석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너무너무 기뻤다. 연세가 많아도 대장암 수술한 지 18일 만에 공부하러 오다니 대단한 열정이시다. 하루에 만보씩 걷는다고 하셨다. 제발 잘 회복하시길. 숙제도 친구 분에게 알아보고 해오셨다.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던 나는 C학생을 보자 기운이 펄펄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