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자 May 04. 2023

“이게 마지막 숙제유”

“눈이 아보여서 공부를 못합니다... 어쩌면 조하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을회관에 수업하러 갔다. 오늘도 문 앞에 벗어놓은 신발 수부터 재빨리 스캔했다. 신발 숫자가 100%다. 아프신 분이 없다는 뜻이다. 신발 수가 적다면 누군가 병원에 가셨거나 집안에 일이 생긴 것이다. 별일 없으니 즐겁게 수업할 수 있는 날이라 기분 좋다.


 학생들은 농사를 지어 항상 바쁘지만 여간해서 결석이나 지각을 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으려면 봄부터 가을까지 늘 할 일이 많다. 일하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하던 작업을 딱 멈추고 공부하러 달려오는 분들이다. 여든을 훌쩍 넘겼어도 돈을 만들기 위해 고추 농사를 짓는 학생도 있다. 이곳 분들은 고기와 생선을 빼고 부식 거리는 모두 농사를 지어서 해결한다. 그리고 넉넉하게 농작물을 가꿔서 시장에 내다 판다. 

    

이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농토를 가지고 있다. 평생 농사짓는 일을 했으므로 거동을 할 수 있으면 90이 넘어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농사짓는 일은 때를 놓치면 안 된다. 항상 바쁘다. 늘 바쁘지만 마을까지 찾아와 한글을 가르쳐 준다니 열 일 제치고 오는 것이다. 수업이 있는 날엔 꼭두새벽부터 일을 한다. 2시간 공부하는 만큼의 일을 미리 해놓고 오는 것이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장 00 학생이 숙제를 내놓으며 말했다. 

    

선생님저 눈 안 보여서 학교 그만 댕길려구유이게 마지막 숙제유.”   

  

한쪽 눈은 이미 실명했고 한쪽 눈은 몇 년 전에 수술했는데 점차 보이지 않아 고생했다. 불편하게 지내던 중 지난해 아들이 외국에서 인공 눈을 주문해 수술했는데 흐릿하게 보여서 늘 불편해하셨다. 마지막이란 말을 들으니 훅 서글픔이 밀려왔다. 가슴은 또 왜 그리 아파져 오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 집에 혼자 계시면 외롭고 우울하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나오셔요. 글씨 쓰지 말고, 숙제도 하지 마셔요. 그냥 제가 설명하는 말만 들으세요.”

커다란 집에 남편도 없이 혼자 생활하는 분이다. 눈이 안 보이는 것처럼 답답한 게 어디 있으랴. 

    

남들 공부하는 것 보면 하구 싶어유쓰기도 허고 읽기도 허고남들 쓸 때 나두 쓰야는디 뭇허니깨 속상해서 그만 둘래유.”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냥 와 앉아서 듣기나 하라고,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증 걸린다고 다들 한 마디씩 말했다. 걷는 것은 지장 없지만 읽기와 쓰기를 하려면 잘 보이지 않아서 못 하겠다는 것이다. 마음이 시렸다.

     

장 00 학생은 이런 상황에도 밭농사를 짓는다. 아들이 와서 거들어 주니까 고추, 상추, 가지, 참외, 김장배추, 김장 무, 쪽파 등등 모든 야채는 자급자족한다. 이곳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신 분이라 당신도 먹기 위함이지만 객지 사는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 심는다.   

  

순간 공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학생이 공부 시간에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가끔 두 번째 시간에 그림을 그리게 했었다. 그날은 한복을 입은 여자 그림 도안이었다. 색을 고를 때, 내가 오매불망 입고 싶었지만 입지 못했던 색깔의 옷이나, 내가 아끼며 입었던 한복의 색, 아니면 지금 입고 싶은 색을 칠해 보라 했다.

그림이 완성된 후 칠판에 그림을 자석으로 붙여놓고 그 옷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도록 했다. 거의 과거에 입었던 옷의 색깔을 칠했다. 장 00 학생 차례가 되었다.    

 

난 결혼식 올리고 저렇게 차려입고 자향(재행)을 갔어유자향 갔다 올 때 우리 신랑이 시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영화구경을 시켜줬슈참 좋았슈색칠을 하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너무 좋았슈그때가 엊그제 같은디.”    

 

짧은 시간 옛날을 회상하며 그립고 애틋한 추억을 소환해서 행복해하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 시절에 시골에서 결혼식 하고 재행(혼례를 올린 후 신랑신부가 처음으로 신부의 본가에 가는 것) 다녀올 때 영화 관람을 시켜줄 정도의 신랑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 말에 다른 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수업 시간마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씻은 후 저녁을 먹고 가방을 열었다. 마지막 숙제라는 학생의 그림부터 꺼냈다. 잘 보이지 않는 한쪽 눈으로 그림 도안의 색칠이 섬세하진 않지만,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도 우수하다. 아니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우수하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도안의 선 밖으로 색칠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가늠한다면 ‘우수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떤 단어가 딱 맞을까?    

 

그림 도안은 남매가 마당에 앉아서 놀고 있는 그림이다. 암탉 한 마리가 병아리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여동생이 무릎에 병아리 한 마리 올려놓고 좋아라 놀고 있다. 이 그림을 완성하려고 하루 중 눈이 제일 잘 보이는 새벽(자고 일어났을 때가 잘 보인다고 함)에 칠한 것이다. 마지막 그림을 그리면서 서글퍼했을 마음을 생각하니 나까지 서글퍼진다. 색연필 가는 곳마다 한숨 쉬었을, 눈물 흘리며 색칠했을 그림이다. 예쁜 색으로 옷 갈아입은 암탉이 여동생을 빤히 바라본다. 무릎에 올려진 병아리가 어찌 될까 싶어서인가 보다.

장 00 학생의 글짓기는 단 네 문장이다.   


선생님 제송합니다나는 공부하고 십지만 눈이 안보여서 공부를 못합니다울고 십편요어쩌면 조하요.”


장 00 학생의 마지막 숙제

  

     

 손목에 얼음조각 올려놓으면 녹을 때처럼 내 가슴이 아리고 시렸다. 울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울고 또 울었을 마음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수업을 다녀오면 초롱초롱 맑은 눈동자와 해맑은 모습을 보아 충전이 되고 좋다. 어르신 수업은 보람은 있으나 이런 일이 생기면 나까지 마음이 천근만근 가라앉는다. 여든다섯 짧은 인생, 이렇게 스러져 가고 마는 것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아등바등 살고 있다. 


나는 안경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지만 이만치 눈이 보일 때 아는 것 더 나누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학생의 자녀분들이 다 효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아들딸들이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해 가져온다. 멀리서 사는 딸은 과일이랑 어머니가 좋아하는 반찬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섭취하면 좋을 것들을 종종 택배로 보내와서 다행이다. 

나는 답 글을 썼다.     


“너무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을, 그 답답함을 어떤 말로 위로해 드려야 할지 단어를 못 찾겠어요. 저도 슬퍼요. 쉬시다가 오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셔요. 읽지도 쓰지도 마시고 듣기만 하셔요. 마을 학교에 나오시면 친구들도 보고 우선 외롭지 않아 좋잖아요.”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게재 한 글입니다.

이전 12화 제발 아프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