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자 Jun 25. 2023

똥도 버릴 것 없는 여자, 그런 여자를 만났다

88세 조교님, 또 한분의 모지스

남을 배려하며 산다는 일은 쉬운 것 같아도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살다 보면 누구나 배려해야 할 때가 있어도 간과하고 지나칠 때가 있다. 더군다나 늘 만날 때마다 배려하기란 어렵다. 한글 수업을 하는데 글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옆 사람을 가르쳐 주며 수업을 따라 하기는 더 어렵다. 그런데 이 마을 학교에 배려하는 것을 일상으로 하고 있는 마음씨 고운 정 00 학생이 있다. 난 그 학생을 정 조교님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조교님이다.     


 마을 학교 학생 중에 오일장 날이면 장사를 하러 다니는 최 00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공부하는 날이 장날과 같은 날이면 으레 결석한다. 그것도 두 지역에서 장날마다 장사하므로 수업 날짜랑 두 군데 오일장이 겹칠 때가 많다. 당연히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 최 00 학생이 요즘 장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당연히 진도를 따라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진도를 못 따라오는 학생까지 이끌고 가려면 자연 수업이 지연되고 진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이 최 00 학생을 정 00 학생이 옆에 앉혀 놓고 하나하나 가르쳐 주며 수업하고 있다. 나는 정 조교님 덕분에 원활한 수업을 할 수 있어 참 좋다. 또 최 학생은 모른 채 지나갈 수도 있는 부분을 정 조교님 덕분에 알고 지나가니 더없이 좋은 것이다.     


 정 조교님 덕분에 최 학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정 조교님은 88세 연세라서 귀찮을 수도 있고 당신 공부 따라 하기도 힘들 터인데 공부하는 날이면 의무인 것처럼 86세 최 00 학생을 가르친다. 아름다운 정 조교님과 열정 넘치는 학생들이 있어 매 수업이 즐겁다.     


 정 조교님은 혼자 살면서 하우스에 꽈리고추를 심어 판매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고추를 수확하면 박스 포장을 한다. 이 작업도 손수 척척 해낸다. 공부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고추 하우스에서 고추를 따 박스에 포장해 놓는다. 수업 시간이 오후 1시 30분 ~ 3시 30분이고, 꽈리고추는 3시에 농협 차가 실어 가기 때문이다.    

 

공부가 얼마나 하고 싶으면 새벽부터 일해놓고 수업에 참석하겠는가. 88세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 농사일하고, 시간을 내어 공부한다는 것이 여간한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정 조교님은 그렇게 바쁜 중에도 틈을 내어 그림도 그린다. 그림도 얼마나 잘 그리는지 놀랍다. 물론 그림 도안에 색칠하고 그림에 어울리게 글쓰기 하는 것은 날마다 숙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스케치를 직접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리기 수업은 못 한다. 그런데 정 조교님은 오로지 그림 도안에 색칠해 본 경험으로 스케치북에 혼자 스케치해서 그린 그림이 상상 초월이다. 잠이 안 올 때에도 그림을 그린다고. 그러고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그날 해야 할 고추작업을 끝낸다고 한다.     





이렇게 새벽부터 농사일해 놓고 마을 학교에 와서 공부하려면 힘든 것은 불 보듯 뻔한데. 최 학생이 공부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당신 옆에다 앉히고 최 학생이 모르는 것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고 있다. 어떤 모임에 갔을 때 일이다. 자기를 보고 ‘똥도 버릴 것 없는 여자’라고 칭찬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 정 조교님이야말로 똥도 버릴 것 없는 여자다.


두 분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 이유


 정 조교님도 훌륭하지만 가르쳐 준다고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최 00 학생도 감사하다. 일반 학교에서도 수업하다 보면 공부 잘하는 학생도 있고 못 하는 학생도 있다. 어르신 학생도 마찬가지다. 빨리 습득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늦게 습득하는 어르신 학생이 있다. 

    

마을 학교에서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더딘 학생에게 읽는 것을 가르쳐 줬다. 좋은 의도였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자존심 상했다고 그날로 당장 학교를 그만두어 버렸다. 모르니까 배우는 것이고 옆에서 가르쳐 주면 감사한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학생이 있는 것이다. 어릴 때 학교 못 다닌 것은 똑같은데 조금 많이 안다고 가르쳐 주려 한 것이 마음을 크게 다쳤다는 이유다.     


 나는 정 조교님이 최 학생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칭찬하고 학생들에게 칭찬의 박수를 치게 했다. 그리고 최 00 학생에게도 가르쳐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잘 배우는 점을 크게 칭찬하고 최 00 학생에게도 큰 박수를 치게 했다.     


 “우리는 모르니까 배우러 오는 것이고 모르면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습니다. 가르쳐 주시는 정 조교님도 훌륭하시고, 배우는 최 00 학생도 훌륭하십니다. 저도 여러분을 가르치러 다니지만 시간 되는대로 공부하러 다닌답니다. 알아야 할 게 많거든요.     

 요즘 세상은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으로 100세 시대 살아가려면 어려워요. 시대에 따라 적응하고 살려면 계속 배워야 한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는 것 있으면 누구에게나 묻습니다. 왜일까요? 모르는 것을 알려고요. 모르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에요. 모르는데 아는 척한 게 창피한 거죠. 그리고 모르면 답답하잖아요. 정 조교님과 최 00 학생 모두 모두 칭찬드려요.”    

 

 80대 어르신들의 공부하는 모습, 배려하는 모습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 학생들 덕분에  시골마을에서 잘름 잘름 넘치던 옹달샘 물처럼 행복이 넘친다.


-이글은 오마이 뉴스에 발행된 글입니다.-

이전 10화 진작 배웠음 화가 됐을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