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종료 3일 전(2), “내가 책을 낼지 어찌 알었겄슈”
수업 종료 3일 전, 두 번째 시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지나간 활동 순간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두 번째 시간 끝나고 영상 하나를 더 보여드리기로 했다. 이번엔 그림 솜씨 훌륭한 학생들 출판기념회 영상이다. 책이 세상 밖에 나왔으니, 출판기념회를 하고 출판기념 영상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이 영상을 만들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마을 학교 수업은 미술 시간이 따로 없다. 나는 치매 예방도 되고, 색감을 느끼며 사물을 표현해 보는 재미도 있게 하려고 그림 도안에 색칠하는 작업을 가끔 했다. 그림 도안에 색칠이 끝나면 칠판에 붙여놓고 색의 이름과 칠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처음엔 도안 밖으로 삐져 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하얀 도화지에 입혀지는 색깔을 재미있어하셨다. 색칠이 끝날 때마다 칠판에 붙이고 색깔 이름을 여러 번 알려드렸지만 번번이 초록색, 파란색, 연두색, 하늘색들을 한결같이 파란색이라고 말했다. 하긴 색연필을 잡아보는 것이 처음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르신 학생들은 색이름은 잘 몰라도 그림 그리기는 행복해했다.
“오래 살다 보니 그림도 그려보고 출세했네유.”
그러다가 코로나19 발생으로 마을 학교 수업도 중단됐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자, 비대면 수업을 해보기로 했었다. 80대 어르신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못하기 때문에 줌으로는 못했다. 과제를 만들어 대문에 매다는 방법으로 했다. 이 방법은 교과서로 수업을 할 수가 없어서 교사가 재량껏 과제를 만들어 수업을 진행했었다.
과제는 고심 끝에 A4용지 두 장에는 따라 쓰기 문제를, 한 장은 A4용지 위 부분엔 그림 도안을 넣고 그 아래는 네 줄 선을 그었다. 도안에 색칠하고 그림에 맞는 글을 지어 네 줄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을 지어 쓰지 못하는 학생은 교과서에 있는 문장을 쓰기로 했다.
드디어 대면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림 도안을 칠판에 붙여놓고 네 줄 글쓰기 맞춤법 수정이 끝나자 88세 최 학생이 말했다.
“손주들이 집에 왔다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며 할머니 그림 잘 그렸다고 입술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갔슈. 그런디 손주가 다음에 올 때 그림도구를 한 보따리 사 왔지 뭐유. 그래서 그림을 그려 봤더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밤에 잠도 안 자고 그려유. 밭 매다 말고도 그린다니께유.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아랫집 사는 정 00두 같이 그려보고 싶다 해서 지금은 함께 그려유. 아, 그런디 나보다 잘그려유.”
이 그림은 대대로 남겨야 한다
나는 다음에 학교 올 때 그림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다음 수업 때 두 분이 스케치북을 가져왔다. 스케치북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나. 어머나.’ 이 말만 되풀이했다. 학교에 다녀보지 못한 80대 어르신이 그림을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했는데 스케치를 직접 해서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그렸다니 대대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림을 책으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주면 어떻겠느냐고 두 학생에게 말했다. 그냥 두었다가는 학생들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다 불태워 없어질 것 같아서다.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생들도 그림을 보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두 분에게 책 편집을 해드릴 테니 책으로 만들 것을 권했다. 그냥 두면 농사만 짓던 분들이라 이런 훌륭한 그림이 있는 줄 몰라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그냥 없어지고 말 것 같은 조바심에 또 오지랖이 발동했다. 문제는 두 분 그림을 수집하고 편집해서 책을 만들려면 없는 시간을 쪼개 써야 한다. 그래도 꼭 책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더 큰 문제는 자비를 들여야 하는 것이다. 간신히 설득해서 책 만드는 것까지는 결정이 났지만, 몇 권을 찍어야 할 것인가도 문제였다. 인쇄소에서는 많이 찍어야 단가가 내려가고, 어르신들은 소량을 원하셔서 그러면 단가가 올라가 가격 타진이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
작가란 소리를 다 듣네요
책을 출판하기로 했으니, 편집하기 위해 그림을 전부 집으로 가져왔다. 그림의 순서를 정하고 앞표지와 뒤표지에 사용할 그림을 정했다. 표지 제호를 짓고, 시간이 없어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캘리그래피로 제호도 직접 썼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두 분책에 넣을 축사도 썼다. 드디어 책이 세상 밖에 나왔다. 88세, 87세에 본인 이름으로 된 책이 탄생한 것이다.
어렵게 책을 낸 분들에게 출판기념회를 멋지게 해드리고 싶었다. 당진시립도서관 영상강의실을 대여했다. 축하하기 위하여 두드림 기타 봉사단, 시 낭송가, 우쿨렐레 연주자를 섭외했다. 학생들에게는 가족들에게 출판기념회가 있다고 이야기는 하되 참석을 못 해도 서운해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한글 선생인 제가 축하드리기 위해 마련했으니 섭섭해하지 말라고 했다.
출판기념회는 진행과 사회를 혼자서 했다. 지인이 와서 영상과 사진 촬영을 도와줬다. 양쪽 가족들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전시회장을 둘러보고 놀라워하며 말했다.
“이렇게 멋진 출판기념회를 열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줄 알았으면 가족 모두 참석할 걸 그랬어요.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못 온 가족들에게 영상을 찍어 보냈더니 아쉬워하네요.”
“선생님이 자식들보다 낫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 분의 영상을 마을 학교 TV에 연결해 보여드렸다. 그리고 두 분 개인 작품만 모아 만든 영상도 시청했다.
“선생님 덕분에 이 늙은이가 책도 만들어 작가란 소리도 들어봤슈. 88세 내 인생에 최고로 기쁜 날 이였슈. 너무 감사해유.”
“오래 살고 볼일이여. 내가 책을 낼지 어찌 알었겄슈. 나두 87세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날 이였슈. 이게 다 선생님 잘 만난 덕분이유.”
※이 두 권의 책은 당진시립도서관 어문학실에 2022년 2월~12월 말까지 전시되었다.
-축가 불러주신 두드림 봉사단, 시 낭송가. 우쿨렐레 연주자님, 사진촬영해 주신 선생님 봉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글은 오마이 뉴스에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