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람 덕분에 깃털이 되었네

by 강재훈

일산에 사는 대학 동아리 후배가 있다. 처음 만난 건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있던 여름방학이었다. 병장 제대한 지 한 달 남짓이라 옷만 민간인이었지, 마음은 아직 계급장을 달고 있던 시절이었다. 후배는 이제 막 1학년 1학기를 마친 풋풋한 신입생이었다.

우리 축구 동아리는 매년 포천의 한 시골 폐교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이름만 훈련이지, 실제로는 운동보다 술이 중심이던 합숙이었다. 선발대는 동네 아이들 공부방을 열며 나름대로 모범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유니폼 증정식이었는데, 돌아보면 참 어수선하면서도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4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예전 선후배 감성은 그대로다. 몇 년 전 비슷한 시기에 각자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이 친구는 벌써 풀코스를 두 번 완주했고 서브4도 찍었다. 최근에는 내가 일산으로 원정 가서 호수공원을 함께 뛰었고, 운동 후엔 귀빈 대접처럼 푸짐한 술상까지 받았다.

며칠 전 퇴근길, 그 후배에게서 톡이 왔다.

“형, 우리 동아리 러너들 모아서 10km 전력 질주로 승부 한번 가르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요즘 스피드에 자신 없던터라 슬쩍 피하려 했는데, 후배가 다시 말했다.

“형이 우리 중 10km 기록 제일 좋잖아요.”

하지만 그건 뒷바람 때문이었다고 했더니, 곧바로 이런 답이 날아왔다.

“형이 뭐… 깃털이에요? 뒷바람 좀 탄다고 기록이 몇 분이나 줄어요?”

‘깃털? 내가 깃털이라고?’

숲 해설가라 그런지 단어 선택이 기가 막히다. 그 말에 퇴근길 전철 안에서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마스크가 내 표정을 가려줘서 다행이었다.

인연이란 게 참 묘하다. 어색한 사이가 편해지기도 하고, 처음부터 끌리던 관계가 오래가기도 한다. 올 겨울 이 녀석 덕분에 즐거운 런닝 이벤트가 좀 생길 것 같다. 연예인들에게는 TV가 사랑을 실어 나르고, 내게는 달리기가 우정을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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