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절정 후배의 쫄리는 제안

by 강재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나온, 나보다 한 살 아래 후배가 있다. 대학 시절엔 같이 축구도 하고 소주잔도 기울이며 지냈지만, 졸업 후엔 각자의 삶에 치여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다 10년쯤 지났을까. 샌프란시스코 출장 중, 그곳에서 유학하던 후배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주말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도 시내 곳곳을 직접 차로 안내하며 하루를 온전히 내어주었다. ‘원래 이렇게 친절한 녀석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또 다시 10여 년. 서로 다른 회사에서 해외 파견 근무를 하다 보니, 국내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카톡이 왔다.

“형, 요새 왜 이렇게 잘 뛰어요?”

내 프로필을 본 모양이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살짝 건방진 그 말투 그대로였다.

그 뒤로 주말 아침, 가족들이 잠든 사이에 둘이 함께 몇 번 뛰었다. 그런데 요즘 녀석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달리는 거리를 쭉쭉 늘리더니 급기야 내 하프 기록을 가볍게 넘어섰다. 그리곤

“형, 이번 주말에 하프 한번 뛸래요?”

도전장처럼 느껴져 살짝 쫄린다.

“난 너처럼 죽자고 뛰진 않는다.”

슬쩍 밑장을 깔아 봤지만, 긴장을 지울 순 없다.

그래도 주말을 생각하면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이 녀석이 아니었다면 이 겨울에 하프 뛸 생각이나 했을까. 겨울 아침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나란히 뛸 그 시간이 참으로 귀하고 고맙다. 다시 한 번 몸을 깨우고, 마음을 달구는 겨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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