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통한 자기 인식의 변화
이직을 했다고 해서 삶이 극적으로 달라질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대기업에서 또 다른 대기업으로 옮긴 만큼,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 운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이직 5년 차가 된 지금, 커리어를 바라보는 관점 만큼은 분명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새 회사에서는 과거의 성과나 평판이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중요한 건 새로운 체계를 얼마나 빠르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였다. 그 과정에서 이전의 성공이 온전히 개인의 역량만으로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 특정 조직의 체계 안에서 가능했던 성과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돌아보면 나는 정교한 프로세스와 시스템 속에서 잘 훈련된 사람이었다. 검증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했고, 그 덕분에 그 체계 안에서는 빠르게 성장하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라는 토양이 바뀌자 상황은 달라졌다. 기존의 방식과 접근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니었고, 새로운 체계에서는 다른 언어와 감각이 필요했다. 생존력은 과거의 성공을 반복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역량과 접근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커리어는 더 이상 연속된 상승 곡선을 그리지 않았다.
내게 이직은 배움이자 점검의 시간이었고, 성숙의 과정이었다. 무엇을 잘 해 왔는지 보다, 앞으로 무엇을 잘 해야 하는지를 묻는 시간이었다. 나의 강점과 한계를 구분하고, 새로운 체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할지를 재정의했다. 뼈아픈 순간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겸손을 배우지 못한 채 오만해졌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직은 더 큰 성과를 안겨주진 않았지만, 이전보다 겸손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한 그 선택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