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수심을 점검하는 일

한강버스 사고에서 이어진 생각들

by 강재훈

커리어에서 리스크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난다. 잘 가고 있다고 믿던 흐름이 갑자기 멈춰 서는 경우도 그렇다. 어제까지는 순항하던 길이라도, 그 아래의 보이지 않는 조건이 달라지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 앞선 글에서 다룬, 멈춰 선 한강버스 이야기가 바로 그런 사례다.

한강의 수심은 계절에 따라 수량이 달라지고, 비가 오면 퇴적물이 쌓이며 깊이는 계속 변한다. 과거에 무사히 지나왔다는 경험보다, 지금의 수심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일이 안전한 항로를 지키는 데 더 중요하다.

커리어도 한강의 흐름처럼 보이지 않는 수심의 깊이에 좌우된다. 우리는 속도와 방향은 자주 고민하지만, 지금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깊이가 있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길이 열리면 속도를 내고 확장을 서두르지만, 그 아래의 수심 점검은 소홀하기 쉽다.

커리어에서 말하는 수심은 직함이나 과거 이력이 아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통하는 역량, 스스로 해법을 설계하는 힘, 배우고 적응하는 태도. 이런 것들이 쌓여 커리어의 실제 깊이가 된다. 조직이 바뀌고 역할이 달라지면 기대 수준도 달라지기에, 어제까지 충분했던 깊이도 어느 순간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나는 이직 이후에야 이 사실을 체감했다. 그 동안의 성과는 분명 나의 역량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특정 체계가 만들어 준 안전한 항로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항로는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내는 수심의 변화 앞에서는 리스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변화된 환경에서 지속적인 수심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커리어의 수심을 점검한다는 건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 속도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잘 왔다는 확인보다, 오래 안전하게 갈 수 있는지를 점검하는 과정. 이 점검이야말로 커리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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