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잘 탔다는 말, 그 안쪽 이야기

by 강재훈

대학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된 순간이 있었다.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 우린 시대를 참 잘 탄 것 같아요. 남들보다 암기 좀 잘하고 계산 좀 빠르다는 이유로 좋은 대학에 가고, 그 덕에 지금 제법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잖아요.”

나도 바로 맞장구를 쳤다.

“몇 백 년만 일찍 태어 났으면 힘 센 사람들 밑에서 살았을 거고, 몇 십 년만 늦게 태어 났어도 정보와 계산을 AI가 대신하는 세상이라 지금 같은 대접을 받긴 어려웠겠지.”

돌이켜보면 우리가 능력이라 믿어온 것들은 사실 그 시대가 요구한 기술에 가까웠다. 정해진 문제를 빠르게 풀고, 정답을 외우며, 주어진 기준 안에서 최대 성과를 만들어 내는 일. 우리는 그 규칙에 비교적 잘 적응했고,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조금만 달랐어도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지는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걸 운으로만 치부하고 싶진 않다. 운이었을지언정, 우리는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성실하게 공부했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밤을 새우며 쌓아 올린 시간과 결정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났다기보다, 시대가 요구한 능력을 성실한 태도로 익혀 온 사람들에 가까웠다.

다만 지금은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이라는 자리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검색과 계산은 이미 AI가 인간을 앞선다. 정보는 넘쳐나고, 정답을 찾는 속도는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른 종류의 힘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 그 답을 어떻게 해석할지, 그리고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 분별력 같은 것들 말이다.

시대가 바뀌면 필요한 능력은 달라진다. 하지만 그 능력을 익히는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지 않는 마음, 내가 올라온 사다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자세,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지식보다는 생각하는 방식을 남겨 주려는 태도. 어쩌면 우리가 끝까지 증명해야 할 능력은 변하는 시대 앞에서도 계속 배우고 적응해 나가는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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