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서울에 오신 어머니께 챗GPT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으시고, 심심하실 때는 친구처럼 대화해 보시라고.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 전문을 직접 타이핑해서 찾는 법, 말로 물어 보는 법, 그리고 그 결과를 음성으로 들어보는 법을 알려 드렸다.
손자와 브런치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만화로 그려보는 것도 해봤다. 할머니에게 어깨동무한 화면 속 두 주인공은 여느 연예인 못지 않게 멋있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화면을 키워 보시며 세상의 변화를 신기해하셨다.
약통에 붙은 안내서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약 성분과 복용법을 알려주는 기능도 보여드렸다. 이제 외국 여행 중에 사오신 비타민이나, 어디에 쓰는지 헷갈리던 마사지 크림도 혼자서 용도를 알아내실 수 있게 됐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아마 20년쯤 전이었을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문자 보내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셨다. 나는 별 고민 없이 말했다.
“뭣하러 문자를 하시려고요. 그냥 전화하시면 되잖아요. 일부러 문자 배우실 필요 없어요.”
친구분들이 문자를 쓰기 시작해서 어머니도 배워야겠다고 하셨는데, 무뚝뚝한 아들은 그 말을 흘려버렸다. 결국 어머니는 딸에게서 차근차근 배우셨다.
그때의 나는 시대의 흐름도, 관계의 방식도 몰랐다. 배운다는 게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이기도 함을 그 땐 알지 못했다.
지금 카톡으로 온 가족이 자유롭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건, 그 때 어머니가 기꺼이 배움을 선택하셨고, 아들을 패싱하면서까지 딸에게서 도움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위에 AI라는 업데이트를 얹어 드렸다. 20년 전의 실수를 조금이나마 만회하기 위해서.
시대에 맞춰 계속 업데이트를 받아들이는 어머니, 그 옆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가족들. 요즘 내가 감명받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이런 장면들이다. 배우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내 자세를 고쳐 먹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