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나눠주는 사람

by 강재훈

육상 경기를 보다 보면 바람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그 바람의 영향이 그렇게 클까 싶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그 차이가 엄청 크다는 걸 알게 됐다. 맞바람에서는 아무리 힘을 써도 속도가 잘 붙지 않는다. 호흡은 금세 거칠어지고, 체력 소모도 분명히 느껴진다. 그러다 방향을 바꿔 뒷바람을 얻는 순간,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발구름만 경쾌하게 가져가면 속도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다.

마라톤 중계를 보면 최상위 선수들 중 몇몇은 일부러 최선두에 서지 않는다. 누군가를 앞에 세우고 살짝 뒤에서 달린다. 앞선 선수가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체력 안배를 통해 후반부에 승부수를 던지기 위한 전략이다.

얼마 전 겨울 한파 속에서, 한강의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아들과 나란히 달린 적이 있다. 옆에서 보니 아들의 숨이 조금씩 가빠졌고, 다리 움직임도 점점 무뎌지는 게 보였다. 힘든 이 순간을 잠시 잊게 해주고 싶기도 했고, 바람의 영향을 직접 체감하게 해주고 싶었다.

“OO아, 아빠가 신기한 거 보여줄게. 이제 아빠가 네 앞에서 달릴 테니까, 넌 아빠 뒤에서 그냥 똑같이 뛰어봐.”

잠시 후, 아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신기해요. 바람이 하나도 안 느껴져요. 그리고… 따뜻해요.”

아들의 호흡은 금세 안정됐고, 조금 전까지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도 자연스럽게 내려왔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 둘이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때리던 바람은 사라지고, 등 뒤에서 바람이 우리 몸을 힘껏 밀어 올려줬다. 아들의 보폭이 살짝 넓어지고, 발구름의 회전수도 함께 올라갔다. 이미 몸으로 느꼈을 테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많다. 모두가 같은 바람을 동시에 맞으며 갈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앞서서 바람을 막아주고, 누군가는 그 뒤에서 숨을 고르며 다음을 준비한다. 그러다 방향이 바뀌면, 모아둔 힘으로 다시 치고 나갈 수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함께 간다는 건, 모두가 같은 바람을 맞는다는 뜻은 아닐지도 모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누군가는 바람을 맞고, 누군가는 고마움을 배우며 가는 것. 그렇게라면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한 호흡으로,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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