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드득, 참 잘했어요

by 강재훈

주말이면 가족과 요리를 해 먹고 설거지할 일이 많아진다. 내가 하는 요리라 해봐야 짜파게티, 스테이크, 볶음밥 같은 단품들이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을 보면, 다음엔 또 뭘 해볼까 생각하게 된다.

요리를 하는 일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 신선한 재료를 꺼내고, 깨끗한 냄비와 프라이팬을 올려두는 순간부터 묘한 기대감이 생긴다.

행복한 식사 뒤에는 어김없이 설거지할 그릇들이 쌓인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을 보면 요리할 때 누렸던 설렘 같은 건 없다. 다만 묵묵한 책임이 따른다. 지금 씻어 둔 컵과 그릇들은 가족들이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다. 어쩌면 설거지는 미래를 위한 준비 작업일지도 모른다.

회사도 비슷하다. 누군가는 새 제품을 만들고, 환한 얼굴의 고객을 만난다. 반면 누군가는 문제가 생긴 제품을 들고 온 고객을 만난다. 새 제품을 만드는 일이 요리라면, 수리와 고객 대응은 설거지에 가깝다.

불편을 겪은 고객의 마음을 살피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그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다음 제품 기획에 더없이 좋은 힌트를 얻기도 하고, 대응의 태도와 결과에 따라서는 충성 고객을 만들수도 있다.

예전에 빌 게이츠가 하루의 마무리를 설거지로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억만장자의 설거지가 우리 어머니들의 일상과 같았을 리는 없다. 그래도 주말에 설거지를 하다 보면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설거지를 하면 마음이 맑고 차분해진다. 창 너머의 석양이 나를 따스하게 비추기도 하고, 와인을 한 잔 곁들인 날에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틀어두기도 한다.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다 보면 그릇과 손이 맞닿을 때 맑고 경쾌한 ‘뽀드득’ 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들으면, 학창 시절 선생님이 숙제장에 찍어주시던 ‘참 잘했어요’ 도장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오늘은 충분히 잘 산 것 아닐까.

뽀드득, 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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