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댁 거실 장식장에는 여행지에서 사 오신 술들이 제법 진열되어 있었다. 집에 술을 즐기는 사람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귀한 손님이 오시거나 자식들 혼사처럼 경사가 있을 때를 대비해 하나둘 모아두신 것들이다.
이제 어머니 댁에는 명절에 자식들이 찾아오는 것 말고는 큰 손님을 치를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술들을 우리에게 가져가라 하셨다. 명절에 와서 마실 와인 정도만 남기고, 위스키와 보드카, 고량주를 서울로 가져왔다.
나는 집에서 식사하며 가볍게 술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위스키와 고량주는 제법 마셨는데, 보드카에는 영 손이 가지 않았다. 어떤 음식과 함께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딱히 끌리는 맛도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모임에서 보드카에 얼음을 듬뿍 넣고 콜라를 섞어 마신 적이 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청량감이 상당히 좋았다. 그 뒤로는 집에서도 가끔 그렇게 마신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얼음이다. 얼음이 없으면 그 청량함은 오래 가지 못한다.
나는 원래 보드카의 맛도 몰랐고, 콜라도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둘을 얼음과 함께 섞으면, 각자일때는 몰랐던 새로운 맛이 된다. 친한 친구에게 만들어 주고 싶을 만큼 맛이 좋은, 나만의 칵테일이다.
개별로서는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나면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 탁구나 배드민턴 종목에서 단식보다는 복식에서 더 빛나는 선수들이 있는 것처럼. 이때 얼음은 코치 역할을 한다. 결국 팀이 만들어내는 맛이 최종 결과물이니까.
얼음이 녹아가며 만들어내는 조화처럼, 혼자서는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좋은 짝을 만나는 일. 이것 역시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하나의 소중한 성공 방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