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껏 지각과 함께 살아왔다. 학창 시절 늦잠으로 인한 지각도 있고, 버스가 예정보다 늦게 와서 약속 장소에 늦은 경험도 있다. 입시에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 재수를 선택한 일 역시, 의도한 지각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한 순간의 지각이 최종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가는 길이 거의 같았고, 시간당 쏟을 수 있는 노력의 양도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출발이 늦으면 도착도 늦을 확률이 높았다. 학창 시절의 개근상이 그 중요성을 말해준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사뭇 다르다. AI 덕분에 단위 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상상 이상으로 늘었다. 그야말로 생산성의 폭증이다. 이제는 시간이 부족해서 일을 못하는 경우보다, 전략과 방향이 잘못되어 성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AI 시대에는 조금 늦게 출발했더라도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그 차이를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고, 때로는 역전도 가능하다. 경로를 수정하는 비용은 낮아졌고, 그만큼 다양한 선택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기 때문이다. 생산성의 폭증은 더 많은 일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는 신호로 보는 편이 낫다.
이제 지각이라는 이름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늦게 출발한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은, 어쩌면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각은 실패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재설정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