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오래 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들을 다시 본다. 〈클래식〉, 〈범죄의 재구성〉, 〈라디오 스타〉 같은 영화들이다. 이미 여러 번 봐서 주요 장면들은 다 기억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면 늘 신기한 경험을 한다.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선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내 기억과는 다른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주연 배우들의 젊고 풋풋한 얼굴을 보는 것도 반갑고,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배우가 단역으로 스쳐 지나가는 걸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누구도 하루 아침에 대스타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다시 배운다.
얼마 전에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무려 20여년 만에 다시 보게 됐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다. 맨 처음 등장하는 배우 이름이 이병헌도, 송강호도 아닌 이영애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이영애가 나왔었나?’
더 놀라운 건, 그녀가 그저 주연 중 한 명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내 기억 속에서 이 영화는 오롯이 이병헌과 송강호의 영화로만 남아 있었다. 나의 기억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긴 것이다.
사람 사이의 기억도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순간을 겪고도 각자 다른 장면을 기억하고, 그 차이로 인해 오해가 쌓이기도하고, 관계가 어긋나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실제보다 거친 모습으로 남고, 또 어떤 기억은 더 아름답게 미화되어 남기도 한다.
기억이란, 우리가 다시 써 내려가는 삶의 편집본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순간은 더 따뜻하게 간직하고, 불편했던 기억은 나를 성장시킨 한 장면으로 정리해 두는 것. 결국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영화를 정성껏 편집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