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연주할 줄 아는 악기도 하나 없고, 좋아하는 가수라 해봐야 이문세,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정도다. 음악은 늘 배경에 있었고, 내 삶 가까이에 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다. 동네 브런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고, 아침 출근길에 듣는 모닝 바이브도 내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퇴근길에 유튜브는 90년대와 2000년대 발라드 음악을 최상단에 올려둔다. 알고리즘 덕분에, 그 시절의 공기와 추억을 별다른 준비 없이 다시 만날 수 있다.
나와 달리 아들은 음악을 좋아한다. 피아노를 치고, 드럼도 즐긴다. 곧 중학생이 되지만, 공부 시간을 조금 쪼개서라도 음악 수업만큼은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 음악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더 넓혀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른이 된 후에도 곁에 오래 남을 친구 하나쯤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사회는 고도 성장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AI가 인간의 노동 대부분을 대신할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노동 시간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수명은 더 길어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음악의 의미도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남는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 시간을 조금 더 인간적인 곳에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음악을 듣는 시간도 좋고,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주하며 그 순간에 흠뻑 빠져드는 시간도 좋겠다. 생산성과 효율로 재단되지 않는 시간들 말이다.
요즘 나는 주말 저녁, 아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위스키 한 잔씩 즐기는 재미에 빠져있다. 피아노 선율이 거실의 공기를 가득 채우면,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차분해지며 몸은 따스해진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와 아침 조깅을 마치고 브런치 카페에 앉아, 바로 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음악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내 삶에, 가장 조용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음악이 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