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적 제도 안에서 일하고, 평가받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학교에서도 그랬고, 직장에서도 그랬다. 사회와 조직이 커지는 동안, 나의 성장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남들과 속도 차이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급은 오르고 연봉은 늘었으며 자산도 조금씩 쌓여갔다.
어느덧 나이는 쉰에 가까워졌고, 회사 안에서도 시니어 레벨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나는 거대한 항공모함의 갑판 위에 선 수많은 선원 중 한 명이었다. 잘 닦인 갑판 위에서 내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였고, 가끔 돌아오는 후한 평가와 격려는 나를 더 멀리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곳은 돈을 버는 일터이자, 동시에 신나는 놀이터였다.
하지만 AI와 로봇의 등장으로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기업이 공채를 통해 대학생을 대거 채용하던 풍경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조직은 더 유연해졌고, 개인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이제는 남이 만들어 놓은 갑판 위에서 어떻게 잘 달릴지를 고민하기보다, 내게 어울리는 갑판을 스스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혼자만의 글쓰기였다. 일상의 변화, 조직과 기술의 흐름,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빠른 길보다 오래 가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지, 성과보다 관계가 남는 구조는 어떤 모습일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래도록 서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갑판을 만들어보자고. 그렇게 해서 1인 연구소, ‘변화의 흐름 연구소’의 연구소장이 되었다. 연구소지만 정답을 제시하거나 해답을 내놓는 곳은 아니다. 사회와 기술의 변화를 관찰하고, 삶과 성장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자문하고 사색하는 나의 공간이다.
아주 작은 나무판 하나를 직접 깎아 돛단배의 갑판을 만들어본다. 그 위에 서서 바람의 방향을 느끼고, 물결의 속도를 가늠하며,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항해를 이어간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