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뷔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다. 비싼 돈을 내고도 내가 직접 음식을 가져와야 하고, 골라 먹는 재미는 있지만 결국 과식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중에 뭘 맛있게 먹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식 피로연이 아니라면 뷔페를 일부러 찾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는 호불호가 비교적 분명한 사람이었다. 좋고 싫음이 명확한 편이고, 한 번 불호로 분류한 것에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불호를 이렇게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좋은 것만 해도 모자란 인생에 싫어하는 것까지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선언한 ‘싫음’ 때문에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요즘의 나는 예전만큼 불호가 많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호라는 이름표를 붙여두고, 그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까지 함께 날려버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조금씩 불호를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고, 다시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시도 자체를 차단하고 마음 속에 선을 그어두지는 않으려 한다. 그 덕분에 가족들과 함께 찾은 지난 주말의 뷔페 식당에서는 기대 이상의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불호를 줄이는 연습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할 여지를,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가능성을 함께 열어주는 일이다.